만화리뷰
네가 없는 시간, 내 앞에 놓인 시간
<네가 없는 시간> 글 조주희, 그림 도도 / 코미코
최윤주 2020.08.19



네가 없는 시간, 내 앞에 놓인 시간

01.
 잃어버리는 법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백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보면서 때때로 드는 생각이다. 무엇이든 대체 가능하고 쉽게 잊히고 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자주 우울하고 가끔은 무섭다. 낮에 망가진 물건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다음 날이면 받아볼 수 있는 시대에, 사소한 불편감과 이질감조차 용납하지 않는 세계에, 부재(不在)를 견디는 힘이 얼마나 남아 있나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 유행하는 ‘환생물’, ‘빙의물’, ‘회귀물’들을 보며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고 하면 지나친 감상일까. 하기야, 생각해보면 절망과 후회 속에서 전부 리셋한 뒤 재건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욕망을 먹고 자라왔고, 묘한 해소감과 안도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간과 좋은 공생관계였다. 병들어가는 사회의 징후- 같은 해석은 역시 지나치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은 이 만화일지도 모르겠다. 기껏 ‘타임슬립’을 소재로 하면서도 욕망 앞에서 과감히 굴지 못하고 기어코 상실을 마주하는 점이 눈길을 붙든다. 그래서 아프지만 끝내 아름다운 만화, <네가 없는 시간>의 이야기다.


02.
 <네가 없는 시간>의 시작은 동생 영훈의 생일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다. 생일은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날이기에 기다려지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날이기도 하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면 말이다. 그것은 밤이 저물면 새로운 낮이 돌아오듯, ‘안녕’ 하고 집을 나선 가족이 ‘안녕’ 하고 돌아오듯 당연히 돌아올 것이란 믿음이다. 주인공 정훈이 얄미운 동생의 생일날 다정히 축하하기보다 짓궂게 굴었던 것도, 그런 의심 없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평범한 생일날 한 가족의 믿음이 산산조각 나고 만다. 축하를 받은 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학교에 간 동생 영훈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탓이다. 실종된 것이다. 영훈이 사라진 뒤의 6개월은 고작 두 계절을 지날 뿐인 짧은 시간임에도, 갑작스러운 상실을 안고 건너기엔 너무도 괴로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불면증을 앓게 된 엄마는 약에 의해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아빠는 이기지 못할 만큼 술 마시길 반복하다 끝내 가족들 곁을 떠나고 만다.
철없고 웃음 많던 정훈은 이 모든 일을 목격하는 버거운 역할을 떠맡는다. 동생을 잃고도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은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바로 그래서 더 큰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OMR 카드에 남기던 검은 마킹 자국이 동생의 발자국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개연성 있게 다가옴은, 대개 상실 앞에서 마음이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 전혀 상관없는 것들 하나하나가 소중했으나 지금은 없는 누군가로 귀결되는 것, 부재는 그렇게 감각된다.

 시적인 문장과 서정적인 수채화 그림이 일견 덤덤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만화는 소중한 이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려내는 데 조금도 물러섬이 없다. 여름날 장난감 로봇을 들고 사라졌던 영훈은 추운 겨울이 돼서야 그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오지만, ‘당연하게도’ 망가진 가족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한다. 엄마는 여전히 아프고, 아빠는 살아 돌아올 수 없고, 정훈은 보았던 모든 것을 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일 앞에서는 어떤 말도 부족한 것이 되겠지만, <네가 없는 시간>이 그려내는 상실은 ‘송두리째 잃는다’는 말을 그 말 그대로 시현한다. ‘있는 전부를 모조리 잃는다’는 것.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잔뿌리까지 뽑혀나가듯, 당연하던 일상이 죄다 뜯겨 나가는 형태의 상실이다. ‘우리’로 있을 수 있던 과거는 망가졌고, 현재는 정체돼버렸으니 미래는 오지 않는다. 평범히 시험을 보며 겉으로 심상한 척을 해봐도, 네가 없어 텅 비어버린 세계에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거기 아주 소중한 무엇이 있었다는 것을 아픔만이 증언한다. 이것이 그 어떤 여지도, 기적도 없는 냉정한 현실의 상실1)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던데
우리 가족의 시간은 누구에게 빼앗긴 걸까.
우리가 빼앗긴 건
가족들이 언제나 곁에 있을 거란 믿음.
내일도 오늘과 변함없을 거란 안도감,
그런 예측 가능하고 질서 있는 시간들… 2)

너를 잃었던 6개월은 너를 키운 10년을 잊어버린 거였고
너와 함께할 60년을 잃어버린 거였어.
네가 돌아온 집은 예전과는 다를 거야.
우린 시간을 빼앗겼거든.
그건 모든 것을 빼앗긴 거야. 3)

03.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갖고도 실패를 만회하기보다 상실을 직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미 독특한 작품이지만,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그 타임슬립 소재가 3화에 이르러서야 등장하면서 이 만화가 판타지 장르라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지점을 유심히 봐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을 기점으로 상실이 두 가지 의미로 나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상실이 사건으로서의 상실이자 생생한 현실의 상실이라면, 후자는 판타지를 통과하며 아픔과 슬픔이 희석된 대신 조금 더 본질과 보편에 가닿은 상실이라 볼 수 있다.
뒤엉킨 시간의 흐름을 유일하게 기억하는 목격자가 된 정훈은 시간능력자가 같은 반 남자애 은우였고, 그가 반복되는 엄마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시간을 돌려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정훈의 아빠가 돌아가셨던 그 시간이야말로 은우의 엄마가 살 수 있었던 유일하게 ‘완벽한’ 시간이었고, 서로의 소중한 사람을 뒤바꾸는 짓은 할 수 없었던 은우가 결국 시간을 돌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서로의 상실감을 이해하는 두 사람은 싸우는 대신 함께 완벽한 시간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한다. 동생과 아빠를 잃지 않고 은우의 엄마가 살아남는, 그 어떤 부재도 없는 ‘완벽한’ 시간을.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등가교환의 법칙인지, 정해진 운명이 있기 때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치 감당해야 하는 상실의 총량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하나의 죽음을 막으면 다른 죽음이 발생하는 식으로 모든 시간에 구멍이 발생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감정을 묘사하는 데서 출발해서인지 판타지적 요소들이 불현듯 은유로 읽히는데, 반복되는 실패와 상실이 마치 선택의 무게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하나의 선택은 곧 다른 가능성을 선택하지 않음을 뜻하기에,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와 아쉬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은, 되풀이되는 시간을 전부 기억하는 정훈의 모습을 통해 보다 선명히 전달된다. 새롭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정훈은 가족을 지켜내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실의 순간을 자꾸만 맞닥뜨린다. 울고 있던 자신에게 기적을 말해주던 은우 엄마의 다정함, 절망 속에서 버팀목이 돼주던 미수와의 우정, 아빠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은우와 비슷한 상실감을 공유하며 마음을 연 기억, 동생을 찾던 날 아빠와 함께 보았던 절실하고 아름다웠던 무지개까지. 이전 세계에서 겪었던 일들이 새로운 세계에선 없던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가 왔기에 볼 수 있었던 무지개처럼, 텅 비었기에 새롭게 들어찰 수 있던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폐허처럼 망가진 자리에도 소중하고 각별한 무엇은 생기기 마련이기에 계속되는 회귀는 번번이 상실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완벽한’ 시간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던 것이다.


1)  한편 이 일련의 일들을 ‘빼앗긴’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정훈의 말은 어떤 종류의 상실은 더욱 고통스럽고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어떤 상실이 사고라기보다 사건에 가까울 때 그것은 너무 이르고 폭력적이어서 부당하고,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것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된다. 잊힐 수 없고, 잊혀서는 안 되는 실제 현실의 사건들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도 상실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2) 2화
3) 3화


04.
흔적도 없이 사라진 누군가에 대해, 어떤 판타지들은 남은 이들의 기억까지 말끔히 지워주는 전개를 선택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실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상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과 마음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련이란 너무나 미련한 마음이라서, 잃어버린 것들은 사라지는 대신 커다란 공백이 되어 기어코 마음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 공백은 어떻게 할 수 없어 끌어안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세계의 진짜 기적은 어떤 상실도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겨우’ 네 존재의 유무만으로 세계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에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없음으로 세계가 텅 비어버렸다는 것은 한때 그 세계가 너로 인해 가득 찼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니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을까. 부재를 지운다는 것은 존재했음을 지우는 일인데. 모든 것이 끝내 스러지고 말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을 있는 힘껏 사랑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그것들에 도래할 상실을 끌어안을 각오가 필요하다.
반복되는 현재로 인해 한계에 다다른 세계의 끝에서 정훈과 은우가 서로에게 묻는다. “비극을 마주할 용기”가, “완벽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보겠다고 다짐하는 용기”가 있는지. 동생의 발자국을 연상케 하며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던 마킹 자국이, 선택의 길목에서 찍혀나가는 저마다의 발자국으로 치환되는 순간은 상징적이다. 돌이키는 대신 나아가보겠다고 말하는 용기 앞에 미래가 펼쳐진다. 한 걸음 한 걸음 너무나 힘이 들겠지만,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걸어나가는 시간 속에서 보게 될 풍경은 곳곳이 텅 비고 상처가 나 있기도 하겠지만, 결코 잊고 싶지 않을 만큼 반짝이고 아름다운 모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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