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도대체, 다정하고 귀여우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최윤주 2020.10.26



 도대체, 다정하고 귀여우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01.
 SNS를 뒤적거리는 일이 본격적으로 마음 불편해져 간다. 흔히들 얘기하듯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해 보여!’ 같은 생각이 들어서는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다. ‘나만 빼고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아…!’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 위기감이 하루 이틀의 문제였겠느냐만, 글을 쓰면서부터는 그 위협이 훨씬 실제적이고 묵직한 것이 되었다. ‘프리랜서’란 이름 아래 모두가 (유사) 자영업자로 살아가는 현실. 일할 땐 일을 해서, 쉬는 날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혹은 하지 못해서) 힘드니 사실상 연중무휴다. 과열된 가판대 같은 SNS를 보는 일이 즐거울 리가 없다.

 최근 한국의 문화계를 보면 창작이란 것도 완전히 ‘노동’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 같다. 이제 예술가로서 요구되는 것은 천재성이나 돌발적인 영감이 아닌 매일매일 성실히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다. 예술에 필요한 물리적 노고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정당한 보수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변화는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놓고 박수 칠 수만은 없는 것은 내가 매일매일 무언가를 해내는 성실한 인간이 아닌 탓이다. 예술적 천재성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듯 노동의 항상성도 모두가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매일 신체적 한계와 감정적 충동, 상황적 변수를 누르고 같은 시간에 같은 양의 노동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사실 강철같이 강인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태생적으로 게으른 사람에게 더없이 가혹한 시절을 살고 있다. ‘재능이 없어서’, ‘여건이 안 돼서’라는 사연엔 차라리 참작의 여지라도 있지만, 게으른 사람에겐 어림없다. ‘그렇게 살다간 인생 망한다’는 식의 으름장은 이미 대뇌에, 양심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알면서, 누워 있는 거다.

02.
 ‘도대체’ 작가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이 가혹한 사회에도 아직 동족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서 순수한 반가움을 느꼈다. 퀭한 눈으로 혼이 나간 채 정신없이 작업하는 모습의 표지가 인상적인 『뭐라고? 마감하느라 안 들렸어』는 제목에서부터 착실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착실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마감을 끝낸 후 잠자리에 들었을 테니까. 한밤중 회오리처럼 몰아닥치는 마감에 맞서는 결의에 찬 모습은 대개 게으른 자들의 일상(말로)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휴일」1)이란 에피소드를 정말 좋아하는데, 게으른 모습이 나와 소름 끼치게 닮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휴일의 오전 9시. 큼직한 베개에 여유 낙낙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도대체 씨가 생각한다. “휴일!!! 미루던 옷장 정리를 하고 전시회에 가야겠다. 그런 다음 근처 서점에서 관심 분야 책을 찾아보고 이동해서 쇼핑도 해야지. 맛있는 것도 먹고 오자.” 오전 11시, “누워 있으니 좋구나~” 오후 1시, “밥 먹었으니까 좀 쉬다 나가야지.” 3시, “슬슬 나가긴 해야 하는데…” 5시, 이때부턴 계획 조정이 불가피하다. “전시회는 글렀군. 서점에 들렀다가 쇼핑하러 가야겠네.” 예상했겠지만 당연히 8시, 10시에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일이 끝난다. 이때 포인트는 복사해 붙여넣은 듯 누운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미동 없는 모습이다.
 모처럼 주어진 휴일을 남김없이 탕진해버리는 모습이 눈물 나게 익숙하다. 괜히 계획 같은 것을 세워서 마음만 불편해지고, 그렇게 불편하면서도 끝까지 이부자리를 뜨지는 않는다. 언제 나를 사찰했나 싶을 정도다. 간사하다면 간사한 것인데, 인간은 어째서인지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존재할 당위성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각자도생의 정글 같은 세계 한복판에 유유히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있는 도대체 씨를 보니 게으른 내 인생에도 묘한 안심이 된다.


1)  도대체, 『뭐라고? 마감하느라 안 들렸어』, 은행나무, 2019, 89쪽.



△ 65화 ‘나로 사느라 고생이 많다’



03.
 그러한 안심은 그가 그려낸 작품들을 감상할 때 확신으로 다가온다. <그럴수록 산책>에서 <아무래도 집콕>으로 이어지는 8컷의 짧은 만화들에 담긴 소담한 풍경들은 너무도 ‘도대체 씨다운데’, 그 풍경이 볼수록 보기 좋아 그런 만화를 그리게끔 한 그의 삶 전체를 긍정하게 한다. 창작물과 창작자의 관계는 신기할 정도로 유기적이어서, 다른 인간이었다면 다른 형태의 작품이 됐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수 킬로씩을 산책하고 엉뚱한 공상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러한 시간을 쓸데없는 낭비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기에 이런 작품이 가능했다는 것을 만화를 읽다 보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에 기록된 사소한 존재들의 면면이 삭막한 사회의 풍경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모든 회차들이 한없이 다정하고 귀여운데, 개인적으로 유독 마음에 드는 것은 ‘그 해 노래하는 돌들이 나타났다’ 편(51화)이다. 산책길에서 종종 발견되는 “돌로 위장한 스피커”를 보며 세심히 헤아리고 재밌는 공상을 펼쳐낸다. “그런 스피커를 생각해 낸 사람도 귀엽고/산책길에 투입되어 본의 아니게/스파이 노릇 중인 스피커들도 귀엽습니다.” 사소한 사물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거기에 얽힌 얼굴 모르는 이의 귀여움을 생각해내는 사람은 세심한 다정함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붕어빵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이 ‘붕어빵’이란 것을 떠올렸을 때/얼마나 기뻤을까 상상”하며 덩달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고(42화 ‘붕어빵’) 이사 오며 이모에게 받은 증정용 수건들에 적힌 이름들을 바라보며 “이모의 추억도 저희 집에 오게 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64화 ‘기념 수건’) 사람이기도 하다.

 무생물인 스피커를 귀엽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일상 속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생물들에도 한없이 너그러울 수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보인다. 하필 비가 그치지 않는 해에 태어난 매미들을 보며 “기죽지 말라”고 얘기한다거나(71화 ‘맴맴’) “숲에서 가장 반짝거리는 존재는 똥파리”라는 사실에 즐거워하는(34화 ‘똥파리’) 모습 역시 엉뚱하지만 귀엽고 다정하다. 작가 도대체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결정적 계기가 된 작품 ‘행복한 고구마’2) 이야기가 보여준 엉뚱함과 천진난만함 역시 그러한 다정한 시선의 연속일 것이다.


2)  인삼밭에 태어나 자신을 인삼이라 믿었던 행복한 고구마 이야기. 진실을 알게 된 뒤의 반응이 관전 포인트다.

04.
 게으름을 변호하면서 서두를 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을 무언가에 공들이고 애쓰는 노고 자체를 폄하하려는 의도에서 쓰지는 않았다. 들인 시간과 정성이 그에 합당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믿음은 정직하고, 그래서 무의미하지도 무력하지도 않다. 다만 특정 종류의 노력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서, 결국 어떤 사람들의 삶을 부정하게 됨이 불만스러웠을 뿐이다.

 그 증거로 좀 전에 나는 대체 씨의 다정함과 귀여움을 설명하면서 기뻐‘할 수 있는’ 사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이 사실은 흔하지 않고 그래서 더 가치 있는 ‘능력’이라 믿기 때문이었다. 살아갈수록 귀여움이나 다정함 같은 것들이 저절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분명해진다. 무언가에 오래 애정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는 살뜰한 마음 씀이 없다면 다정함이나 귀여움은 쉽게 마모되고 만다. “나를 조이고/속이고/때리고/울릴 수도 있는 세상에서”(15화 ‘나를 지나치는 모든 것들’) 이것들을 지켜내는 일이란 생각보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가까스로 지켜낸 시선 안에서, ‘게으른’ 사람은 그저 게으른 사람으로 남지 않는다. 사소함과 서로 다름을 멸시하지 않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천천히 걷고 한눈을 파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게으르다기보다 유유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질책하고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 방식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산책길에 멍하니 앉아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다정하고 귀여워졌으면 좋겠다



△ 2화 ‘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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