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마녀> : 언어와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 1부
<마녀> 저자 이가라시 다이스케 / 애니북스
손유진 2020.12.01



<마녀>: 언어와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 1부 


 최근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해수의 아이>의 원작자 이가라시 다이스케는 반-인본주의적 메시지를 견지하는 작가로, 국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 <리틀 포레스트>와는 다소 이질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을 주력으로 탐미적인 추상 표현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 중 하나인 <마녀>는 인간의 언어적 접근을 거부하는 자연적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인 ‘마녀’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마녀>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각국의 마녀들이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겪는 사건들을 그려내고 있다.

 본작에서는 이가라시 다이스케 특유의 손에 잡히지 않을 듯한 개념들을 화면으로 포착하는 능력이 십분 발휘되고 있으며, 이는 그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비언어적인 것들에 대한 메시지와도 상통한다. 특히 그는 ‘행위’로 대변되는 비언어를 자연과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로 상정하며 인간의 언어적 특성과 대립시킨다. 그의 관점과 작품을 언어로써 분석하는 것은, 그에게는 유감이지만, 필수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바로 그의 비언어적 세계관을 비판하기 위해서 그러하다. 그러나 우선 이에 선행하여 이가라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마녀’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리뷰는 2부로 나뉘어져 진행될 것이다.

 1. 무엇이 ‘마녀’를 부르는가
 마녀는 이중의 호명이다. 그들은 이중의 세상을 살아간다. 인간들의 세상과 자연의 세상이 그것이다. 인류에게 그들은 이단으로서 마녀이다. 자연에게 그들은 현자로서 마녀이다. 마녀가 있는 세계에서 주류의 사람들은 마녀를 불온한 존재로 여기며 마녀는 그만의 장소에 숨어 살아간다. <마녀>에 수록된 거의 모든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마녀의 반목을 주된 요소로 다루고 있다. 그 중 가장 명확하게 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쿠아루푸> 에피소드이다. 밀림 속 한 부족이 살아가는 오지를 개척하기 위해 용병들이 몰려오고 주술사 ‘쿠마리’는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정령을 부려 용병들을 살해한다. 백인 국가의 파괴 행위에 맞서는 부족을 마법적인 존재로 묘사한 것은 서양을 위시한 언어중심적 체계를 비판하기 위함으로, 현대성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계몽주의-제국주의 속 ‘언어의 틀’이 가지는 폭력성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이 폭력성은 특히나 유럽 등 1세계의 대상화된 자연관을 대변한다. 주객의 구분과 더불어 객체가 주체의 주변부에서 작용한다는 칸트적 믿음은 일방적 분별을 낳게 되고 여기서 이단의 개념이 발생한다. 물론, 이단 재판은 중세부터 이어져온 유구한 관습(이단 재판이 소멸했음에도)이지만 이를 개념화하고 합리화한 것은 근대 계몽주의의 기여가 크다. 인간중심의 자연관에서 마녀는 비주체로 객체가 되기를 자청하며 이러한 연유로 주체의 경계에 서있는 ‘인간적’ 인간들은 그들을 이단으로 선고한다.

 한편 그들이 마녀가 되는 것은 자연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편 <스핀들>에서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유목민의 아이 ‘시랄’은 ‘계시’를 받아 베를 짜고 부족에게 ‘소질을 가진 자’로 불리게 된다. 자연의 어떤 목소리에 의해 마녀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연에게 선택받음으로써 자연과 소통한다. 이것이 자연의 호명이다. 자연의 호명은 이단 개념의 전유이다. 그들은 확실히 인간적 인간과는 다른 존재이다. 언어를 통해 자연을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의 호명은 언어를 통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마녀들은 이를 ‘느낄’따름이다. 따라서 호명(呼名)보다는 명(命)에 가깝다. 명이란 1. 사람이나 동물이 숨을 쉬며 살아 있는 힘, 또는 2.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이다. (네이버 사전) 한편 명령, 부름의 함의도 포함하고 있다. 이름이 아닌 부름으로서 존재하는 마녀의 개념은 행위하는 자로 살아가며 언어를 초탈한다.

 2. 언어로써 세상을 아는 자, 행위로써 세상을 아는 자
 다음의 문제의식은 ‘앎’에 관한 것이다. <스핀들>에서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마녀인 시랄에 대비되는 존재인 ‘니콜라’가 등장한다. 그는 고대의 ‘서적’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활자, 즉 언어로 터득하며 거대한 힘을 다스리게 된다. 그러나 이는 작중에서 불완전한 앎으로 묘사된다. 시랄이 전달한 계시는 “세계의 진정한 비밀, 인간이 건드릴 수 없는 앎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니콜라는 불완전한 앎을 안은 채로 소멸한다. 니콜라가 끝을 맞이하기 전 자신이 마녀가 되리라 예언한 노파를 찾아갔을 때, 노파는 니콜라에게 “네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스몰 위치’로 남게 될 것”이라 일갈한다. 이는 세계의 비밀을 ‘해독’했다고 믿는 니콜라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해독은 해체와 같은 해(解)를 공유한다. ‘풀다’라는 뜻을 가진 이 한자는 재단의 맥락을 지니고 있다. 이를 작가의 메시지에 반영하여 말한다면 해독은 자연을 멋대로 잘라내는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페트라 게니탈릭스>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위대한 마녀 ‘밀라’는 자신을 이단으로 취급하는 교황청에게 “당신들의 언어는 온갖 가능성을 특정한 성질로 구분해버리는 나이프, 자기들 입맛대로 세상을 썰어대는 도구”라 비난한다. 그렇다면 마녀는 언어의 대안으로 무엇을 택하고 있을까? 이는 바로 행위이다. 밀라는 외계의 돌로 인해 재앙을 맞이한 세계를 구하려 자신을 희생한다. 그는 돌을 다시 지구 바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자신의 몸 속에 봉한다. 밀라가 돌보는 작은 마녀 ‘알리시아’가 희생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를 제지하자 그는 “마녀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을 뿐”이라며 그에게 내려진 의무를 강행한다. 행위를 언어의 대척점으로 삼는 존재가 마녀이다. 세계의 흐름을 이해하고 순응하는 의미로서 명의 이행이 되는 행위는 세계의 흐름을 ‘나이프로 끊어 놓으려 드는’ 언어와 대항한다. 작중에서는 자연을 받아들임으로써 온전한 행을 취할 수 있으며 그러한 존재는 마녀가 된다고 말한다.

 <노래를 훔친 자> 에피소드에서는 행위의 자연적 성격을 십분 드러내고 있다. 주인공 ‘히나타’는 충동적으로 여객선을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선상에서 만난 미스터리한 여성 ‘치타루’는 자연을 느끼는 법을 알려주며 히나타에게 신성한 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단편에서 자연은 ‘노래’로 표현되며 마녀는 그 리듬에 공명하는 사람이다. 리듬에 공명하기 위해서는 말이 아닌 행위가 필요하다. 세계에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는 행위를 해야만 비로소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행위는 세계에 대한 수용이자 이해이이며, 명에 대한 집행으로 정의될 수 있다.

 3. 소유의 역설, 그리고 ‘제국주의’
 이어서 <노래를 훔친 자>는 히나타가 섬에서 훔친 소라 조각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히나타는 섬에서 깨달은 것들을 잊게 될까 걱정하며 소라 하나를 훔치게 되는데, 이는 작중에서 다뤄지는 소유에 대한 메시지와 관련이 있다. 소유란 일종의 정복 욕구이다. 히나타는 학생으로, 교무실에서 충동적으로 수학여행 비용을 훔쳐 달아난다. 돈을 써버리기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는, 자연의 흐름을 깨달았음에도, 또 다시 소라를 훔친다. 훔친다는 것은 강제로 대상을 소유한다는 뜻이다. 대상을 소유한다는 것은 나와 대상을 구분한다는 뜻이다. 히나타는 자연이 리듬과 동화되는 행위, 주객의 구분을 없애는 행위임을 깨달았음에도 기어이 대상을 소유하고자 하였으며 이에 대한 처벌로서 태풍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다.

 개인이 아닌 전체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소유욕을 표현한 작품은 <쿠아루푸>이다. 선진국이 개발을 위해 밀림을 난도질하는 모습은 제국주의로 극대화되는 인간의 정복 욕구를 보여주고 있다. 언어는 정복의 수단이며 언어의 최종 목적은 세계를 온전히 인간의 영역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마녀 ‘쿠마리’는 이를 처단하기 위해 자연의 힘을 사용한다. 언어에 대한 자연의 복수가 쿠마리를 통해 집행된다. 언어가 가진 폭력성은 더욱 거대한 폭력에 의해 진압될 뿐이다. 자연과 대립하는 인간은 언어라는 무기를 통해 세계를 분해하여 진압하려 하지만 결국 패배하게 됨을 <마녀>는 시사한다.

 <마녀>의 일관적인 메시지는 디즈니 장편 영화 <포카혼타스>와도 일맥상통한다. 포카혼타스가 부르는 작품의 대표곡 ‘Colors of the Wind’는 자연 만물에는 영혼과 이름이 있으며 인간은 이를 소유하지 못하고 단지 동화될 뿐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의 언어로는 세계를 소유할 수 없으며 애초에 세계는 소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언어로 대변되는 인간의 정복 심리는 자연에 의해 좌절될 수 밖에 없음을 <마녀>는 그들의 존재를 통해 지속적으로 주지시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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