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세상의 모든 소심쟁이들에게 <모브코의 사랑>
<모브코의 사랑> 저자 타무라 아카네(AKANE TAMURA) / 대원씨아이
최윤주 2020.12.14



세상의 모든 소심쟁이들에게 <모브코의 사랑>

아무 말도 못한다싱거운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잠깐 성격 검사를 해보자.


☐ (주문할 때) 틀렸어도 아무 말도 못한다.
☐ 자리를 떠날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 나쁜 방향으로 자의식 과잉이다.
☐ 가르쳐주는 건 배울 때보다 긴장된다.
☐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도 우유부단하다.
☐ 낯을 가리므로 되도록 아무와도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 대화를 미리 시뮬레이션한다.
☐ 그 시뮬레이션은 대체로 안 좋게 끝난다.

 몇 개나 해당하는지? 사실 항목들이 유사해서 하나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선택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줄줄이 해당 항목을 선택했다면 당신도 스스로가 꽤나 피곤한 ‘소심쟁이’가 아닐까. 경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방금 당신‘도’라고 말한 것은, 나 역시 당신처럼 소심쟁이이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초면에 성격 검사를 하다니 무례했나’ 하는 중….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테스트는 성격 검사가 아니다. 만화 <모브코의 사랑>에 언급된 ‘모브코의 습성’을 발췌해온 것이다. 이 만화의 주인공인 ‘노부코’는 “평범하고 얌전하며 눈에 띄는 게 불편한, 이야기로 예를 들면 모두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보다, 구석의 조연으로 있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한, 그런” 사람인데, 어찌나 소심한지 다닌 지 1년이나 된 마트의 휴게실에서도 아직 경직되어 있고, 친해지고 싶은 직장동료의 연락처는커녕 인사를 나누는 것조차 어색할 정도다. 마트의 면접날에도 큰소리로 이름을 말하지 못해서 조연이라는 의미의 ‘모브(mob)코’라는 이름으로 오해받은 것이다. 말하자면 조연 같은 주연을 그려낸 만화다.

 그런데 그런 소심쟁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노부코는 마트에서 함께 일하는 ‘이리에’에게 받은 도움이 잊히지 않은 추억으로 남아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그때의 친절이 이리에 본인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겠지만”, 1년 동안 마음만 졸일 뿐 연락처 하나 못 물어본 사이지만, 늘 눈에 띄지 않는 듯하면서도 섬세히 친절을 건네는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

 이럴 때 일반적인 순정만화와 같다면 노부코의 마음을 깨닫게 된 이리에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까? 혹은 우연한 계기로 급격히 가까워지는 전개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가 바로 이 만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이리에 역시 소심쟁이다. 노부코만큼은 아닌 것 같지만(그는 메뉴 정정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자기 마음을 결정 짓는 데 퍽 우유부단하고 옷차림을 칭찬하는 것조차 쉽지 않고 문자 하나 보내는 데 결심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브코의 사랑>은 엄청나게 소심한 사람이 아주 많이 소심한 사람과 사랑해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쉬지 않고 상대와의 거리를 측정하며 자신의 행동이 적절했는지를 점검한다. 옷을 칭찬하는 것은 직장동료 사이에는 과한 것이 아닌가, 둘만 약속을 잡자 하는 것은 역시나 부담스럽지 않을까, 내 주제에, 나 ‘따위가’ 이런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되는 것인가. 생각 풍선이 말풍선만큼 많다. 노부코와 이리에가 만나는 과정은 정말이지 순탄치가 않다.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도 더디고, 연락처 하나, 만나자는 약속 하나, 또 만나자는 약속 하나 주고받는 일(첫 만남으로부터 두 달 뒤), 손잡는 일 하나하나에 단행본 한 권씩이 필요할 만큼 서툴고 느리다. 그런데도 이 만화가 좋은 것은 왜일까.

 일단은 노부코와 이리에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나오는 구성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매사 노심초사하는 성격인데 짝사랑까지 하는 노부코의 심정에만 집중됐다면 이입해 보는 동안 소심쟁이 독자는 가슴이 오그라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공평한 타이밍에 이리에의 시점이 제시되고, 이리에 역시 노부코를 바라보며 긴장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제시되기 때문에 만화를 보는 일이 한층 즐거워진다. 사실 두 사람의 사이엔 특별한 사랑의 장해물이 없고, 단지 정말 두 사람의 성격 때문이라서 용기를 낸다면 그때마다 한 걸음씩 진전될 수 있는 것이다. 안심이 전제된 상태에서 조급해할 것이 없기에, 답답함이 아닌 풋풋함으로 둘의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다.

 안절부절못하는 두 사람의 시선 안에서 서로가 그저 무덤덤해 보이는 것도 재밌다. 노부코에겐 이리에가, 이리에에겐 노부코가 속을 알 수 없이 평온하고 담담해 보인다. 함께 있는 게 즐겁지 않은 것인지, 이 모든 것들을 나만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 속으로만 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사실은 두 사람 다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고, 긴장한 것이 티 나지 않기 위해 또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독자는 지켜볼 수 있다. 남이 고생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짓궂은 취향이라기보다는, 두 사람이 긴장한 서로를 눈치챌 때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안심하는 것처럼,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독자들 역시 나만 애쓰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또 한 번 안심하게 되는 것 아닐까. 소심한 현실의 독자를 위한 작은 위로다.

 조연 같은 주연을 그려내는 것만큼이나 ‘진짜 조연’을 그리는 방식도 좋다. 활달해서 여유 있는 모습으로 조언해주는 마트의 동료들 역시 사실은 저마다 관계에서 주저하고 실수하며 얻은 깨달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성격 차이라는 것이 있으니 모두가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사 의연하고 모든 것이 쉽기만 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여러 인물의 진솔한 사연을 통해 찬찬히 확인해나간다. 밝고 씩씩하게만 보였던 그들도 용기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조연 같은 주연을 그리는 만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평한 시선이 아닌가 싶다.

 사실 수줍은 사람으로 타고 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까지고 수줍기만 한 경우는 드문 것 같다. 타고난 소심함을 누르고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순간도 오고,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없는 활기를 끌어올려야 할 수도 있다. 배달음식을 시키기 위해 대본을 쓰고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아이가 환불을 요구하는 어른으로 자라는 것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아마 편리함 때문에 그런 것일까. ‘지나치게’ 숫기 없는 모습은 어쩐지 다 큰 어른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고, 그보다는 낯선 사람과도 쉽게 어울리는 센스 있고 사교적인 인간을 세상은 더 반기는 것 같다. 소심함을 버리는 일이 으레 ‘성장’으로 여겨지고, 그렇지 못할 때는 아쉬운 일이 된다.

 하지만 노부코와 이리에를 보고 있자면, ‘소심함’이 꼭 그렇게 나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리에가 노부코를 좋아하고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게 되는 계기는 노부코의 섬세함이 지닌 다정함을 발견했을 때였다. 어린이 손님이 잃어버린 네잎클로버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진지하게 습득물 기록장에 적어둔 노부코를 보며, 타인의 마음을 사소하게 지나치지 않는 모습에 마음이 기운 것이다. 시들어버릴 클로버를 분실물로 보관해두다니, 역시나 만화적인 과장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것만은 꽤 분명하다. 소심한 사람이 섬세하고, 그 섬세함이 타인에게 향할 때 다정함이 될 수 있다는 것.

 사소한 일이라도 진심이 응답받을 때, 오랫동안 곱씹으며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일 역시 소심한 사람들이 좀 더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쁜 일을 며칠, 몇 주, 심지어는 몇 년까지 곱씹는 극도로 예민한 마음과 과히 좋은 기억력은 다행히 좋은 일에도 가끔은 힘을 발휘해서 소중한 순간들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과거의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소심하면서도 그때 용기 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그래서 이 만화는 연애 이야기지만, 좋아하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위해 용기를 내본 모두를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심함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끌어안은 채 가까스로 용기를 내고, 그 용기를 기반 삼아 작게나마 인연과 기적을 만들어본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답답하기보다 풋풋하다고 봐주는 것처럼, 우리 안의 소심함에도 좀 더 관대한 시선이 따라왔으면 좋겠다. 끙끙대며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마음의 반성회로 분주한 노부코와 이리에를 귀엽게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 그대로, 문자 하나 보내고 주문 하나 하는 데 여전히 마음 졸이는 누군가(나 자신을 포함해서)가 있다면 다정히 봐주면 어떨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들에도 조금은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방금 보낸 문자에 물결 대신 느낌표를 써버린 것. 너무 호기롭나? 물결이 좀 더 친절하게 느껴졌으려나? 둘 다 아니고 이모티콘이 나았을까? 그러고 보니 이 리뷰는 괜찮나?! 바로 이런 생각을 멈출 수 있게 말이다.



<모브코의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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