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이상 추구와 집착 그 사이 어디쯤, <심야 이동도서관>
<심야 이동도서관> 오드리 니페네거 글그림, 권예리 역 / 이숲
박근형 2021.01.19



이상 추구와 집착 그 사이 어디쯤, <심야 이동도서관>

한 젊은 정치가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렸을 때 처음 발견했던 담장 안의 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렸을 때 단 한 번 들어가 본 문 안에는 행복의 세계가 있었다. 그는 살면서 그 문을 여러 번 보았고, 죽음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일 년에 세 번이나 그 문을 보았으나, 그때마다 그가 추구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에 문에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공사장 구덩이 속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그 근처에는 인부들의 편의를 위한 쪽문이 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부주의한 실수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고 했지만 과연 정말 그런 것일까?

 

H.G. 웰스의 단편소설 <담장 안의 문(The Door in the Wall)>의 줄거리다. 데뷔작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통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 오드리 니페네거는 작가 본인의 꿈과 이 작품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어, 그래픽노블 <심야 이동도서관>을 그리고 썼다. 독특하게도 이 작품은 처음에는 단편소설로 발표되었다가, 후에 일간지에서 그래픽노블로 각색되어 연재되었다.

 


알렉산드라는 남자친구 리처드와 싸운 어느 날 새벽 심야 이동도서관을 마주친다. 사서 오픈쇼가 운영하는 그곳은 놀랍게도 그곳은 모두 알렉산드라가 읽은 책으로 가득 차 있는데다, 그녀의 일기장까지 소장되어 있었다.

알렉산드라는 그 후로 이동도서관을 계속 찾아 헤매지만 조우하지 못하고, 이 때문에 리처드와는 오해가 쌓여 파경에 이른다. 그 뒤로 알렉산드라는 집착하듯 끝없이 책을 읽는다. 그 뒤로 그녀가 심야 이동도서관을 우연히 다시 마주친 것은 9년만이다. 알렉산드라는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만 거절당한다. 그 후 그녀는 책이 점점 불어나는 심야이동도서관을 상상하며 설처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기 시작한다. 그 뒤로 12년의 세월이 흐른다. 알렉산드라가 도서관 관장으로 임명된 다음날, 그녀는 또 심야 이동도서관을 발견한다. 알렉산드라는 책들을 살피며 추억을 더듬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칸에는 그날 아침에 그녀가 읽은 책이 꽂혀 있었다. H.G.웰스 단편 전집으로,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이다. 알렉산드라는 여전히 심야 이동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만, 오픈쇼는 그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알렉산드라는 집으로 돌아간다. 사방에 책이 가득하다. 그녀는 책을 읽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떠올리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다음 순간 알렉산드라는 어느새 도서관 중앙 열람실에 와있다. 비로소 그녀는 도서관의 사서가 된다. 여기까지가 <심야 이동도서관>의 개략적인 줄거리다.

 

끝없이 탐독하고 도서관 관장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알렉산드라가 실제 삶에서 만족했다는 묘사는 거의 없다. 설처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다는 한 줄이 전부다. 알렉산드라는 그녀의 삶 속에서 어떤 것으로도, 어떤 관계에서도 다른 만족을 찾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기억이 실제 일어난 수많은 사건 속에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을 골라 의미 부여를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듯, 작품 역시 수많은 가능성 사이에서 작가가 메시지 전달과 연출이라는 의미 부여를 통해 고른 것으로 구성되므로 아주 설득력 없는 가설은 아닐 것이다.



 


처음 심야 이동도서관을 만나고 돌아온 날, 알렉산드라는 그녀를 기다린 리처드가 무척 사랑스러웠다고 했지만 개성 있는 작화를 감안하더라도 리처드가 그녀를 바라보는 모습은 사랑스럽지 않다. 알렉산드라는 리처드가 그녀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잘 들어주었고 빙그레 웃었다고 묘사했지만 연속된 컷 속의 리처드는 알렉산드라를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처음으로 도서관을 발견한 것도 리처드와 다투고 난 후였다. 심야 이동도서관은 현실의 공허함과 슬픔을 감당하기 위하여 알렉산드라가 만들어낸 공간은 아닐까. 생을 마감하기 전의 그녀의 마지막 독백을 인용해본다.

“리처드와 함께 살던 그 집이었다. … 책들이 아파트를 차지한 셈이었다. 책을 읽기 위해 내가 포기한 모든 것을 돌이켜보았다. 리처드를 생각했다. 오픈쇼 선생님을 생각했다. ”(31p)



리처드와는 헤어진 지 21년이 지났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녀의 집을 ‘리처드와 함께 살던 집’이라고 묘사한다. 그녀가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 정말 책을 읽는 현재의 시간이었을까? 현재가 지나 과거가 되어버린 추억인 것은 아니었을까. 현재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으레 과거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담장 안의 문>과의 <심야 이동도서관>에서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것은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공간에 대한 것이다. 작가 오드리 니페네거는 맺음말에서 직접적으로 도서관은 사후세계로 서술하였으며, <담장 안의 문>에서는 문 너머의 세계는 순수와 희망의 공간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들이 실제 세계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 이들의 도피처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동도서관에는 이용자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기억이 가득하다. 도서관이 사후세계라면, 그리고 그곳에서 알렉산드라가 행복을 느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죽음으로써 행복해지고 싶다는 -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독서(를 통한 기억 회상)라는 현재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목표로 전도되고 집착되어 본래의 역할을 상실한 것이다. 책이 뒤덮어버린 알렉산드라의 아파트는 그를 상징한다. 기억이란 산 자의 특권이므로,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죽음으로써 이동도서관의 사서가 되자, 그녀가 그토록 갈망하였던 자신의 서가는 폐기될 수밖에 없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너무나 피상적인 질문이라 답을 찾기엔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행복에 이르는 방법은 모두가 다르며, 누군가는 평생 이르지 못한다. 알렉산드라는 과거의 책과 기억에 사로잡힌 나머지 현실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아니면 실재에서는 만나지 못할 이상적인 세계에 이르는 방법으로 죽음을 택한 것일까. 오드리 니페네거는 이 작품을 두고 ‘내면의 삶과 외면의 삶 사이의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축약했다. 해석과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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