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동트는 로맨스> - 요즘의 로맨스에 대하여
<동트는 로맨스> 작가 유월 / 네이버웹툰
김민서 2021.03.02




<동트는 로맨스> - 요즘의 로맨스에 대하여


 시대가 바뀌면 로맨스물의 모습도 달라진다. 이상적인 연애 상대의 조건도 변화하고 독자/시청자가 이입하는, 되고 싶어하는 인물상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대에 따라 잘 팔리는 캐릭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필자가 2000년대~2010년대의 로맨스물과 함께해 온 바, 그간의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연애에서의 성역할을 색다르게 제시하는 콘텐츠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냘프고 무력한 여자 주인공과 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해결해주러 오는 잘나고 박력 있는 남자 주인공’ 포맷은 여전히 스테디셀러이지만, 이전에 비해 유사 신데렐라 스토리에 감명받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쩔쩔매며 울고 매달리는 <동백꽃 필 무렵>의 용식 씨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일터에서 남자 주인공과 경쟁하고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하이에나>의 정금자가 수많은 덕후를 양산한 사례들은 비단 일시적인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잘 팔릴 캐릭터는 무엇인가? 수동적이거나 백치미로 승부하는 여자 주인공은 이제 지지층을 확보하기 어렵다. 고전적인 ‘백마 탄 왕자님’도 진부하다. 그렇다고 너무 안 멋있는 남자 주인공은 불안하다. 그 사이 어딘가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여기 요즘의 트렌드를 담은 캐릭터들이 가득한 웹툰이 있다. 지난 5월 연재를 시작한 웹툰 <동트는 로맨스>다.

 

내성적인데 잘생겼고 싸움 잘하는데 인기 많은데 그걸 나만 몰라

 

혹시 ‘하하 유니버스’라고 들어보셨는지? 방송인 하하가 <무한도전> 출연 시절 콩트 캐릭터를 구상할 때마다 ‘잘생겼는데 말없고 내성적이며 싸움까지 잘해서 인기가 많은데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르는’ 주인공 설정을 즐겨해서 팬들이 하하만의 세계관이라며 붙여준 이름이다. 얼핏 유치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하하 유니버스를 조금 변형해 매력 가득해진 캐릭터를 소개하고자 한다.

스물다섯 살 쌍둥이 남매 여명과 새벽은 화려한 외모와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어딜 가나 주목받는다. 쌍둥이 중 남동생인 새벽은 인상이 차갑고 키도 커서 주변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지 못할 뿐더러 다가가기도 어려운 이미지이다. 자연스레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으나, 연애와 관련된 눈치는 어디다 갖다 버렸는지 누군가 자신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지낸다. 여기까지는 하하 유니버스의 고전적 남자 주인공 캐릭터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런데 새벽에게는 하하 유니버스에는 없는 치명적인 요소가 가미된다. 완벽한 그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엄청나게 소심하다는 것이다.

<동트는 로맨스>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바로 이 지점, 새벽의 짝사랑에서 출발한다. 어느 날 새벽은 술자리에서 짝사랑 상대인 광채에게 같이 영화도 보고 공부도 하자며 주접을 떨다 필름이 끊기는데, 술주정에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던 광채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매일같이 새벽과 밥을 먹고 영화관 도서관에 간다. 무슨 대화를 나눴었냐고 광채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나, 우리의 주인공 새벽은 상상할 수 없는 소심함의 소유자다. 광채가 기분 나빠하거나 더 이상 같이 다니지 않으려고 할까봐 차마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로 시간은 흘러간다.

 



에피소드의 초반부는 소심한 새벽의 삽질을 구경하는 과정이다. 광채에게 기억이 안 난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데 광채와 영화 볼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자괴감에 빠지는 모습, 그 와중에 광채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정말 하찮고 귀엽게 그려진다. ‘잘생기고 인성 좋은 인기쟁이인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여리고 수줍은 대학 선배’라니, 이 얼마나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설정인가! 여기서 핵심은 수줍은 그가 잘생겼으며, 필요한 순간에는 굉장한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딘지 하찮은 구석이 매력 포인트로 작용하는 것은 고전적으로 흥행하는 많은 특징을 새벽에게 챙겨 넣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새벽을 보며 하하 유니버스가 연상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잘생기고 성격 좋아서 인기 많은 거 나도 알아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새벽의 쌍둥이 누나 여명은 소심함과는 거리가 멀다. 잘생긴 외모와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사랑받는 데 익숙하고 그에 대해 쑥스러워하지도 않는다. 고등학생 동백은 불가항력으로 여명을 좋아하게 되고 (동백의 생각에는) 기적적으로 사귀는 데 성공해 5년째 연애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명과 동백의 에피소드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사건의 발단은 동백의 친구들의 오해다. 여명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주고 싶어하는 동백을 보고 여자친구에게 호구 잡힌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여명이 들어버린 것이다.

여명은 스스로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연인인 동백의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동백이 해주는 것들을 기억하고 고마워하며, 자신도 그만큼 보답하려는 노력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동백이 헌신하는 만큼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에 잠겨버린다.

물론 동백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것은 여명의 착각인 듯하다. 몸이 약한 동백을 위해 동백을 만날 때만 항상 혹시 몰라 준비한 약품들을 챙긴 가방을 들고 나오고, 동백이 아파하면 속상해하고 자는 동백을 귀엽다고 쓰다듬는… 듣는 친구들과 보는 나의 염장을 지르는 행동들은 여명이 동백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기 감정을 잘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근거 있는 자신감만큼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도 없는 법이다.”라는 동백의 말이 여명이라는 캐릭터를 정확하게 요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잘나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 캐릭터에 독자들은 환호한다. 로맨스 장르의 주 소비층이 여성인 것을 고려하면 여명이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니라 ‘잘생겼다’는 설정이 더욱 셀링 포인트가 되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새벽과는 다른 종류로 눈치가 없는 점도 주인공 클리셰를 잘 변형시킨 대목이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자기 마음이 어느 정도의 깊이인지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눈치 없는 캐릭터는 나름 신선하다.

 

매운맛 가득한 세상 속 순한 맛 맛집


캐릭터들의 매력이 큰 강점으로 작용하지만, 그 외에도 <동트는 로맨스>가 가진 장점은 많다. 가장 큰 특징은 스트레스 요인이 적은 스토리라인이다. 서로 좋아하는 두 캐릭터 사이의 서사에 다른 사람을 끼워 넣지 않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다른 캐릭터가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한다든지, 주인공을 미워하는 캐릭터에 의해 주인공이 오랜 기간 수모를 겪어야 하는 식의 설정이 거의 없다. 새벽 때문에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해 새벽을 괴롭히는 준민이 등장하지만, 그는 만화 속에서 누가 봐도 이상한 사람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새벽의 평판이 훨씬 좋기 때문에 새벽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아 학교 생활이 힘들어지는 그런 상황은 일어날 일이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재분 중에서 가장 빡치는 에피소드조차 독자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미미하다.

주인공들의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는 저항할 수 없는 불합리함이나 지정된 악역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인공 본인들의 성격으로 인해 생긴 귀여운 오해들이다. 광채가 자신을 좋아할 리 없다고 좌절하던 새벽, 여명처럼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 자기 따위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이 여명의 이상형을 연기했기 때문일 거라고 믿는 동백, 자기 감정에 둔감해 동백의 사랑이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헤어짐을 고민하는 여명까지, 캐릭터들의 고민은 전부 좋아하는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인공에게 이입하면 너무나 답답하고 억울한 상황들, 일명 고구마를 잔뜩 먹으며 사건이 해결되는 회차의 사이다를 기다리는 것도 물론 재미있겠으나, 아무런 거북함 없이 인물들의 귀여운 짓거리들을(?) 구경하면 되는 마음 편한 만화도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동트는 로맨스>는 지켜보기 흥미로운 고민들을 내세워 편안하게 귀여운 만화를 잘 구축해냈다.

현실세계가 배경이지만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 유니콘 같은 주인공들이 귀엽게 연애하는 로맨스. <바른연애 길잡이>, <취향저격 그녀> 등 비슷한 컨셉의 인기 로맨스 웹툰들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렇게 대중적인 센스로 재미있는 만화가 왜 네이버에서 순정만화 카테고리로 연재중인 78개 작품 중 고작 36위인지가 의문일 뿐이다. 만화가 주식이라면 오를 거라고 확신하면서 옳다구나 하고 사뒀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의 순위 상승에 배팅하고 있다. 여러분도 맛보시라! 이건 되는 주식이다.

<동트는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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