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역사의 이면을 바라보다 <목호의 난>
<목호의 난> 작가 정용연 지음 / 딸기책방
김진철 2021.03.08


역사의 이면을 바라보다 <목호의 난>




잊혀진 역사 ‘목호의 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제주. 많은 사람들이 낭만을 즐기러 제주를 찾는다. 그러나 환상의 섬 제주는 비극의 역사들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용연의 만화 역시 그런 역사적 사건 중의 하나인 ‘목호의 난’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목호의 난’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제주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 중에 4‧3사건이나 삼별초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겠지만 ‘목호의 난’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다. 그렇지만 제주도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당시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정치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 사건이기도 하다. ‘목호의 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당시 동북아시아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작가는 ‘목호의 난’이 발발하게 되는 원인에 대해 절반 가까운 분량을 할애하여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약 100년 동안 원나라의 목장으로 이용되었던 제주도. 이때 말들을 관리하기 위해 제주에 온 원나라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 목호(牧胡)이다. 하지만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지고 명나라가 새로운 강국으로 등장하면서 고려 정부에서도 원나라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조짐들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공민왕이 펼친 반원정책이다. 이때 명나라는 고려에 말 2000필을 보내라는 요구를 한다. 고려에서는 제주에서 기르는 말들을 보내려고 하지만 막상 그 말들을 기른 목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고국인 원나라를 위해 기른 말들을 적국인 명나라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목호들은 말을 보내는 것을 거부한다. 결국 공민왕은 최영 장군을 앞세우고 많은 군사들을 제주도에 보내서 목호를 토벌하게 한다. 그렇게 제주는 목호와 고려군의 전쟁의 장이 된다. 이 사건을 ‘목호의 난’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목호의 난’이 일어나게 된 배경만 살펴봐도 이 사건이 단순히 제주에서 벌어진 전쟁으로만 한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되는 국제 정세와 이에 따른 고려 조정의 친원 세력과 친명 세력 간의 갈등, 제주도의 소유권을 둘러싼 원나라, 명나라, 고려 사이의 대립 등 다양한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건인 것이다.

 

중앙의 시각에서 지역의 시각으로


만화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가장 큰 특징은 ‘목호의 난’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중앙의 시선으로 보면 반원 정책을 펼치고 있는 고려 조정에 반기를 드는 원나라의 목호들은 당연히 국가의 적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목호를 토벌하는 것은 상당 기간 고려에 영향을 미쳤던 외세를 몰아내고 자주성을 확보하는 일로 여겨졌다. 이러한 해석은 지금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제주도 애월읍의 해안가에는 ‘애월읍경 항몽멸호’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애월 지역이 몽골에 저항하고, 오랑캐를 멸한 곳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삼별초의 주둔지였던 항몽유적지와 목호의 난의 전투의 현장이 애월에 있어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 옆에는 제주에서 삼별초를 이끈 김통정 장군과 목호의 난 때 고려군을 이끌고 온 최영 장군이 동상이 제주바다를 배경으로 함께 세워져 있다. 뿐만 아니라 목호들이 마지막까지 저항지했던 서귀포의 범섬이 보이는 법환 해안가에는 최영 장군의 승전비가 높이 세워져 있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제주 사람들에게도 목호의 난이 오랑캐를 물리친 전쟁이었다고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앙 중심의 해석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 이 사건을 달리 접근하고자 한다. 당시 제주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 제주 사람들을 등장시켜 고려군을 중심으로 기록된 목호의 난의 역사에 제주 사람들의 시선을 교차시켜 보여주고 있다. 원나라가 제주도를 직할지로 삼은 100년 동안 목호들과 제주도 사람들은 다양하게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혼인을 통해 가족이 되기도 했을 것이고, 그 사이에서 자식들이 태어나 혈연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여러 경로로 친분을 맺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평생을 자신이 고려의 백성이 아니라 원나라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목호들과 제주 사람 사이에 특별한 유대감이 형성되었으리라는 것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물론 강대국이었던 원나라 사람과 제주 사람들이 신분적 차이로 인한 갈등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으로써 동지적 인식은 단순히 원나라와 고려 사람이라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을 묶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해보면 일제강점기 45년 동안의 잔재도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100년의 시간 동안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제주 사람들이 과연 고려군에 협력해 단칼에 목호들을 버릴 수 있었을까. 제주 사람 전부는 아니었더라도 분명 목호들 편에 선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목호의 난’은 결국 고려군의 승리로 끝이 난다. 고려군은 목호의 잔재 세력들을 소탕하는 것은 물론 제주에서 기른 말들을 가져갔다. 그렇게 역사 속에서 목호는 제주에서 사라졌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들에 의한 제주 사람들의 피해는 역사 속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목호의 난’에서도 주된 싸움은 목호와 고려군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제주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제주의 역사를 제주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봄으로써 중앙 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반복되는 역사


작가는 ‘목호의 난’을 고려시대에 한정하지 않고 통시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 제주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을 ‘목호의 난’의 재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목호의 난’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 첫 부분에 4‧3사건을 먼저 언급한다. ‘목호의 난’은 고려와 명나라, 원나라 간의 정치적 다툼 속에 많은 제주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4·3사건 역시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면서 제주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시기와 원인은 다르지만 외부 세력에 의해 제주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만은 동일하다. 만화 속 중산간 마을의 소개(疏開) 장면은 오히려 ‘목호의 난’을 통해 4‧3사건의 초토화작전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4‧3사건은 다른 시대에 벌어진 목호의 난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처럼 외적인 요인들에 의해서 제주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일들이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본다.





 만화는 목호의 난이 끝난 뒤의 이야기로 진상품 수탈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섬은 뭍사람들의 것!”이라는 작품 속 말처럼 제주에서 기른 말, 제주를 대표하는 과일인 귤, 해녀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건져올리는 전복들은 모두 육지로 보내졌다. 제주 사람들은 묵묵히 그런 삶을 견딜 수 밖에 없었다. 만화의 마지막은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한 장면으로 끝이 난다. 과거처럼 강제적인 수탈은 없지만 민주주의가 정착한 지금도 제주를 이용하려는 중앙의 시각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중앙 중심의 사고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것이 꼭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각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목호의 난은 중앙의 시각과 제주의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며, 작가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점이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이 과

거에 벌어진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어디에선가 반복되는 일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목호의 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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