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철학과 재미의 경계에 선 웹툰 <데이빗>
<데이빗> 작가 d몬
주다빈 2021.03.11



철학과 재미의 경계에 선 웹툰 <데이빗>



 필자 역시 인간에 대한 정의를 반복해 고민했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저명한 철학자들도 오늘날까지 고민하는 것을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사실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인간 정의를 고민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인간다운’ 삶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 아마 어렴풋이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때 돼지는 인간보다 열등한 동물을 대표했다. 그리고 인간은 돼지가 평생을 추구하는 먹고, 자는 행위보다 고급스러운 쾌락을 향유하기에 ‘인간다움’을 인정받았다. 고급스러운 쾌락은 육체적 쾌락에 반하는 정신적인 쾌락을 의미하는 말로 지성, 감정, 상상력, 도덕적 정감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돼지는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사람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이 물음에서 <데이빗>은 시작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한 돼지가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독자들의 마음에 남아 질문을 던진다.

데이빗은 텔레비전도 볼 수 없는 시골의 돼지 농장에서 여느 돼지와 똑같이 태어났다. 그러나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했기 때문에 여느 돼지와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말이 사람처럼 살았다는 말이 되지는 못했다. 데이빗은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고 돼지우리와 같은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인 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 콘크리트 안에서의 삶이 자신의 엄마, 돼지와 다르게 살 수 없음을 깨달은 데이빗은 농장을 벗어나 서커스단의 단원이 되어 이메리카의 대도시 빅요크로 간다. 스스로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여정이었으나 그곳에서도 데이빗은 말하는 ‘돼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저항하는 세력을 만나게 된다. 이 극렬단체는 데이빗의 동물성을 보여주기 위해 데이빗을 납치해 발정제를 주사한 뒤 암퇘지와 한 방에 가두고 전국으로 방송을 송신한다. 그러나 이 계획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데이빗은 자신의 이드를 슈퍼 에고로 누르며 사람들에게 인간으로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된다. 데이빗은 자신이 한평생 원해온 대로 법을 통해 인간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나 애석하게도 앞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사랑했던 캐서린과의 관계가 망가지며 존재 이유를 잃게 된다.

 




<데이빗>에서는 데이빗을 돼지로 치환하여 이야기를 진행하였으나 인간들 사이에서도 타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보여진다.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집단은 LGBT인데 웹툰에서 특정 종교집단이 데이빗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단체로 등장하는 모습으로 인해 아마도 독자는 쉽게 성 소수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하고 수십 세기에 걸쳐 존재를 부정당해왔다. 또 악의는 갖지 않았으나 단순히 그들을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종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아직도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중이다. 타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는 혐오 감정을 수반한다. 혐오는 원인이 아니라 오염에 대한 공포에서 발현된 결과이다.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던 성 소수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설명하자면, 동성애 혐오자는 인간의 이성애가 ‘정상’이라 취급되어왔던 사회 통념에 반하는 동성애를 ‘인간답지 못한’ 비정상으로 인식하고 자신들이 여기는 정상 상태가 동성애를 통해 망가질 것이라는 공포감을 동성애 혐오 감정으로 발현하는 집단이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이러한 혐오는 지배-피지배 위계를 유지, 강화한다. 그리고 지배 계층은 피지배 계층을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있는 존재로 만든다. 이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데 이성애는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으로 이해되며 육체적 관계보다는 그들 사이의 감정 교류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한편 동성애는 이성애보다 육체적 쾌락을 위해 맺어진 관계로 이해되며 보다 동물적인 이미지로 고착화되어있다. 음지 문화로 소비된 BL이나 GL 장르를 보면 일반 이성애를 소재로 한 이야기보다 섹슈얼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LGBT를 예를 들었다고 하여 데이빗이 성 소수자 집단을 특정해서 만들어진 캐릭터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소수자의 지위를 갖는 모든 이가 곧 데이빗이다.

 




혐오 환경 속에서 개인은 사회로부터 존재 증명을 요구당하며 무차별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이때 증명은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 속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자기 개인의 의견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동의 역시 이루어져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는 개인이 사회를 벗어나 생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서 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자신이 가진 신념이 자기 개인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결과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아예 기억도 할 수 없는 순간부터 부모와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인격을 만들어간다. 인간이 만난 사회의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인격을 만든다. 그렇기에 데이빗은 단순히 스스로 인간이라 선언함으로써 인간이 될 수 없었다. 끊임없이 대중 앞에 서서 자신의 ‘인간다움’을 증명 해야 했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사회 또한 데이빗의 인생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데이빗>에서는 여러 번 인물들이 자신의 칸의 경계를 허물고 다른 칸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만화에서 칸은 시간의 연속선 상에서 어느 순간의 포착이다. 그리고 캐릭터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독자는 이 칸의 흐름을 눈으로 따라가며 이야기를 읽는다. <데이빗>에서는 캐릭터들이 이 칸을 탈출하거나 다른 칸을 침범하기도 하고 칸과 칸을 연결하기도 한다. 칸의 변주가 배경 묘사가 적고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데이빗을 둘러싼 사회가 가진 탐욕, 분노, 역동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번 칸이 파괴된 후, 데이빗은 스스로 인생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른 뒤 자신이 지금껏 갈망해왔던 ‘존재 증명’이 단순히 법적으로 증명됨으로써 끝나는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데이빗>은 요즘 인기 있는 스타일의 작품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데이빗>을 읽은 독자들은 새로운 스타일로 받아들이며 <데이빗>을 좋아했고 데이빗이 던지는 물음에 스스로 고민했다. 코로나 시국과 맞물려 웹툰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만화 전문 플랫폼과 대형 플랫폼은 전투적으로 산업을 확장했고 그만큼 많은 작가가 유입 됐다. 그러나 그만큼 장르의 다양성을 이루어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는다. 단순히 적극적인 물량 공세는 독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플랫폼은 사업 확장을 위해 흥행이 보증된 이야기를 계속해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비슷한 이야기가 재창작됨을 의미하고 그럴수록 어디서 본듯한 이야기를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작품이 갖는 의미나 가치는 사라지고 결국 자극과 재미만 남게 된다. 그러면 독자의 선택폭은 아주 좁아지고 선택권 안에서도 낮은 품질의 생산품을 소비해야 한다. 이 과정의 가장 무서운 점은 독자가 의식하지도 못하게 조용하지만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화살은 돌고 돌아 다시 유통업체로 돌아갈 것이다. 양질의 콘텐츠 제작으로 독자들을 붙잡지 못한다면 독자 유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웹툰을 대체할 수 있는 유희 거리는 요즘 시대에 어디에나 있고 아주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데이빗>에 보인 독자들의 반응은 웹툰 산업이 나아가야 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양적인 확장과 발맞춰 질적 성장이 이루어져야 더 많은 독자를 포용하고 든든한 팬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데이빗>을 통해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 시각을 담아내는 방식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웹툰이 현재의 웹툰 산업에 갖는 의미까지 꽤 방대한 이야기를 아주 짧은 분량으로 담아냈다. <데이빗>은 단순히 독자들에게 내용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질 뿐만 아니라 작품의 존재를 통해 웹툰 산업에도 질문을 던진다. 이제 그 질문을 받은 독자와 웹툰 산업 종사자는 그 답을 갈구해야 한다. 우리는 꼭 맞는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데이빗이 그랬듯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가치관을 확립해갈 테고 결국 그 모든 것이 이 답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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