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유색의 멜랑꼴리>로 읽어본 가족
<유색의 멜랑꼴리> 작가 비나리 / 다음웹툰
김민서 2021.04.07


<유색의 멜랑꼴리>로 읽어본 가족



 이 글을 적고 있는 3월 말, 급작스럽게 따스한 날씨에 벚꽃은 만개하고, 창밖에서는 4.7 보궐선거 선거유세가 한창이다. 선거철마다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생활동반자법과 관련된 공약이다. 생활동반자법은 혈연 또는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사는 사람을 동반자로 지정하여 전통적 기준의 가족이 지니는 법적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이다. 이와 유사한 법이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다. 프랑스는 두 성인이 계약을 통해 부부와 유사한 권리와 의무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시민연대계약 PACS 제도를 1999년 도입했다. 독일도 2001년 혼인과 유사한 공동체에게도 가족으로서의 권리, 부양 의무, 채무의 연대 책임 등을 부여하는 제도를 법규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에 처음 법제화 논의가 시작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여러 차례 생활동반자법의 발의를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에는 정의당 김종민 후보와 녹색당 신지예 후보가 손을 잡고 노인의 동거, 비혼 및 동성 가정, 장애인 공동체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동반자 관계증명 조례 제정을 약속했지만 선거가 종료된 뒤 입법부에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재∙보궐선거가 다가온 2021년 오늘, 시간은 흘렀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송명숙 진보당 후보, 오태양 미래당 후보, 신지혜 기본소득당 후보가 생활동반자 조례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선거가 끝나고 이에 대한 입법이 진행되리라고 예상되지는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생활동반자법이 맞닥뜨리는 주요한 장벽 중 동성 파트너십 반대와 무분별한 동거 문화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동성 파트너뿐만이 아니라 노인 또는 장애인 공동체, 사실혼 관계의 동반자, 비혼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게 권리와 의무를 주는 조례가 단순히 성 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으로도 큰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당최 어떤 동거가 무분별한 동거인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도대체, 가족이란 무엇이고 또 사랑이란 무엇이길래.

 

 기억할 수 있는 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는 그녀를 싫어했다. 아들로 태어났어야 할 둘째가 딸로 태어나 당신을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그녀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었다. 어머니와 살며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던 언니, 남동생과는 형제 사이의 애정이란 없었다. <유색의 멜랑꼴리>의 주인공 도완의 이야기다. 어머니로부터 외면당한 도완에게 애정을 보여준 것은 소꿉친구 영준과 그 가족이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해주는 영준을 도완은 오랫동안 좋아해왔지만 그 마음을 전하기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엄마를 닮아 그를 상처 줄까 봐 두려웠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주변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도완이 대신 결혼 상대로 선택한 것은 영준의 대학 동기 진하였다. 도완이 아닌 영준을 사랑하는 진하는, 성 정체성을 숨기고자 도완과 13년의 가짜 연애를 한 뒤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도완의 어머니가 들이닥쳐 결혼식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도완이 예비 신랑의 외도를 알려 언니의 결혼을 깼다는 이유였다. 그 일을 계기로 도완과 진하는 파혼을 결정한다. 한편 도완의 아버지 여열은 도완의 제안을 받아들여 도완과 함께 사는 2층집에 친구들을 입주시키기로 하고, 그 집에 영준 가족이 함께 살게 되면서 도완과 영준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파국 가득한 이야기에서 도완의 가족은 누구인가. 도완이 생각하는 도완의 가족은 14화에서 도완이 병원 입원 서류를 작성할 때 드러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버지는 걱정하실까 봐 보호자로 적지 못하고, 영준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가 받지 않자 진하에게 전화를 건다. 도완이 정한 도완의 가족은 아버지, 영준, 진하이지만 법적으로는 진하와 영준은 도완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다. 만약 도완이 의식을 잃은 채로 병원에 실려온다면, 수술 동의서를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도완에게 애정을 준 적도 없고, 고등학생 이후로는 교류조차 없었던 어머니 신실화 여사다. 친모보다 훨씬 진심으로 도완을 위할 진하와 영준은 정작 도완의 보호자가 될 수 없다. 혈연관계를 기준으로 하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피상적인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과연 우리나라의 사회적 인식은 그러한 피상적 가족 개념에 머물러 있을까?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시행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여론조사에 의하면 64.4%가 ‘혼인/혈연관계가 아니라도 함께 살며 생계를 공유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반드시 함께 살지 않아도 정서적 유대를 가지고 친밀한 관계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데에는 62.5%가 동의했다. 실제로 다양한 가족의 의미와 형태가 충분히 가시화되지 못했을 뿐 이미 우리 공동체의 가족에 대한 인식도 이전과는 많이 다를지 모른다.


 <유색의 멜랑꼴리>에서 보여주는 가족의 형태도 설문조사 결과와 연관된다. 먼저 살펴볼 만한 가족은 여열이 모은 2층집 식구들이다. 딸 도완, 친구 영곤의 4인 가족, 이혼 후 혼자 지내는 친구 순호까지 일곱 명의 식구가 독립적이면서 때로는 단란하게 한집에서 산다. 여론조사 결과에 등장한 ‘함께 삶’으로써 가족이 되는 형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수십 년간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모여 사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여열의 집은 그러한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 배려하며 위기에는 보탬이 되어주는 여열 하우스 구성원들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적 생활방식의 가능성을 본다.


 

 또한 도완과 영준, 도완과 진하의 관계에서 ‘함께 살지 않아도 정서적 유대를 가지고 친밀한 관계’로서의 가족의 면모도 볼 수 있다. 도완과 영준은 아주 어려서부터 서로 진심으로 이해하고 깊은 애정을 주고받으며 지내온 사이다. 영준이 자신이 입양아임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것도 도완이고, 도완이 아팠을 때 보호자로 가장 먼저 찾은 것도 영준이다. 같은 집에서 살게 되기 전부터 둘은 서로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대상이었다. 둘의 관계는 서로를 잘 아는 소꿉친구의 우정이기도, 너무 소중해 오랜 시간 입밖으로 내지 못했던 연애감정이기도, 삶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며 쌓인 남매 같은 애정이기도 하다. 48화에서 도완은 영준에게 마음을 고백한 뒤 ‘무작정 마음은 내뱉었어도, 애써 더 손을 뻗거나 무언가로 정의 내리지 않고 이대로 흘러가게 두려 해.’라고 독백한다. 관계의 면면이 0과 1로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 면면을 구분할 필요 없이 이미 가족이라고 지정할 만한 깊이의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도완과 진하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가짜 연애에서 결혼까지 할 뻔했을 만큼 서로를 가장 편안한 존재로 여기는 사이다. 같은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도완은 진하의 영준에 대한 사랑이, 진하는 도완의 영준에 대한 사랑이 소중함을 알아서 서로의 마음을 응원하고 살펴준다. 삶의 위기에서 찾게 되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이며, 자신이 마음 아플지라도 서로의 행복을 진심을 다해 바라는 관계. 우리가 흔히 가족 간의 사랑의 전형으로 표현하는 요소들이 아닌가.

어쩌면 가족이라는 게 정말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 2층집 식구들이 모여 저녁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다가 도완은 생각한다. ‘가족드라마의 ‘모든’이란 단어는 목에 걸린 가시 같다. 해당되지 않는 서글픔과 행할 수 없는 강요가 엄습한다.’ 세상에 아주 다양한 색깔과 온도의 혈연관계가 있고, 가슴 미어지는 사랑만이 혈연의 표준인 것은 아닌 것이다. 가족의 사랑에 대한 판타지는 모든 혈연에 적용되지 않으며, 흔히 ‘가족애’라고 불리는 끈끈한 애정과 지지는 혈연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흐르고 가족 개념이 달라진다면 태어나면서 주어진 가족이 아닌 성인이 되고 자신이 선택한 가족 구성원을 가족이라고 부르는 날도 오지 않을까. 가족이라는 개념에 갇히지 않고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유색의 멜랑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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