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찌질한 그 남자의 과거와 현재, <아티스트 : 곽경수의 길>
<아티스트 : 곽경수의 길> 작가 마영신 / 다음웹툰
최기현 2021.04.22



찌질한 그 남자의 과거와 현재, <아티스트 : 곽경수의 길>


충분한 정보는 이해의 폭을 넓힌다

지하철에 한 남자와 4명의 어린이가 탔다. 어린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다니는데도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어린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참다못한 승객 중 한 사람이 남자에게 항의했다. “애들이 너무 소란스럽군요. 다른 승객들도 있는데 주의를 줘야지요.”

남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이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오는 길입니다. 엄마를 먼저 보낸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하여 아이들을 제지할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승객들은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이 더 이상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측은하게 느껴졌다.

남자의 이야기를 듣기 전 승객들은 소란스러운 어린이들에게 불편함을 느꼈다. 전후 사정을 알게 된 후 그 불편함은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충분한 정보는 이해의 폭을 넓힌다. 정보의 부족은 부정확한 판단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 중 하나가 ‘악마의 편집’이다. 예능 기획자의 선별적인 정보 제공은 해당 출연자의 원래 모습과 달리 의도에 따라 좋은 이미지로 또는 나쁜 이미지로 만들 수 있다. 대상에 대한 정보의 양이 이해의 폭을 결정한다.

 

찌질한 그 남자의 과거

마영신 작가의 전작 <아티스트>에서 찌질한 예술가 곽경수(화가), 천종섭(뮤지션), 신득녕(소설가)의 유치찬란한 모습은 희화화된 웃음을 선사했고 처절하기까지 했다. 오늘 소개할 <아티스트, 곽경수의 길>(이하 곽경수의 길)은 <아티스트> 이후 곽경수의 현재를 다룬 외전이다. 동시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찌질한 그 남자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진다.


 



<아티스트>를 읽어본 독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48세의 이혼남, 화가이자 시간강사, 무능하고 타인에 대한 질투로 가득 차 있는 전형적인 꼰대,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허세만큼은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악마의 편집처럼. <곽경수의 길>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곽경수의 새로운 모습이 소개된다. 전작 <연결과 흐름>의 ‘빅맨’, <아티스트>에서 보았던 곽경수의 모습의 과거에 독자들은 조금씩 곽경수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독자들이 찌질하게 보였던 곽경수에게 이해하고 동의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아티스트>에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신득녕은 <곽경수의 길>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만화 초반에 돈을 빌려달라는 신득녕의 문자, 천종섭과의 대화를 통해 출판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신득녕이 몰락했다는 사실만을 알려준다. <아티스트>에서도 그렇지만 곽경수는 신득녕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에서 매몰차게 정리하지도 않고 적정한 선을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신득녕의 모습에서 곽경수는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자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한남충이란 표현 싫어하지만 나 한남 꼰대야. 언제인가부터 권력자한테 아부 떨고 (중략) 나 이제 진실되게 살고 싶어...”라는 곽경수의 고백은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 자존심 상할 수도 있고 부끄럽기도 하다. 자신을 용서하면서 그 과정에서 내면이 치유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계기를 얻는다. 이 장면을 계기로 작가가 곽경수를 표현하는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둘째, 젊은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고, 지나간 세월에 대한 후회를 느끼는 부분이다. 지금이야 배 나온 뚱뚱한 아저씨 몸매를 가졌고, 여자에게 추근대고, 만성적인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미대 오빠 시절 곽경수도 조금은 멋있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줄 줄도 알았고, 밀린 강사 월급을 주지 않는 미술학원을 버럭 박차고 나오는 패기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학창 시절 친구 두원이는 중년의 어른이 되어 버렸다. 젊었을 때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아서 지금의 자신이 별 볼 일 없다는 두원의 푸념은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후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내가 현재를 만든다고 한다. 현재의 불만족은 과거에 대한 후회로 남을 수밖에 없다.

현재의 곽경수와 비슷하거나 그 전후 연배의 독자들은 <곽경수의 길>을 읽으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 지금은 멋있는 외모도 아니고 부모로서 경제적인 부담을 어깨에 지며 살고 있지만, 자신에게도 찬란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회상에 잠길 수도, 또는 왜 그때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할 수도 있다.

 

만화 속 개인전을 현실에서 만나다

만화 속 캐릭터가 현실에서 개인전을 열다니? 마영신 작가의 기발한 발상 덕분에 만화 속 곽경수의 개인전이 독자와 현실에서 만났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지원을 받아 2020년 5월 22일부터 6월 25일까지 파주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곽경수 개인전>이 열렸다. 곽경수가 만화 속에서 작업한 그림 10점 등이 갤러리에 전시되었고, 곽경수의 친한 동생 뮤지션 김오키의 공연, 소설가 박민규의 전시회 소개 글 역시 만화에서 현실로 나왔다. 현실에서의 작업이 만화에 구현되는 경우는 있지만, 만화 속 전시회가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나이나 경력 등으로 신진예술가, 중진예술가, 원로예술가로 굳이 구분하자면, 일반적으로 신진예술가의 경우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하는 과정을 갖는다. 그러다가 중진예술가에 들어서면 실험적인 작품 활동보다는 신진예술가 시절로부터 확립된 자신의 예술세계를 꾸준히 구현하는 작업을 한다. 화가가 개인전을 개최한다는 것은 자신의 그림을 보여준다는 행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개인전을 개최하려면 자신의 예술관이 있어야 하고 그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에 매진했어야 한다. 곽경수의 개인전 개최는 그의 변화된 모습을 결정적으로 표현한 이벤트가 된 셈이다. 현실에서의 개인전 개최는 독자에게 만화와 함께 전시 관람의 재미를 선사했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곽경수의 길>은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새로운 곽경수의 모습을 보여줬다. 곽경수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찌질한 한 남자에 대한 시각을 바꾸거나 또는 그대로 갖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찌질해 보였던 꼰대 캐릭터 안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양한 감정이 있음을 표현한 마영신 작가는 <곽경수의 길>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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