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기계아이의 노래> : 살아있지 않은 존재와 함께하는 미래는
<기계아이의 노래>, 작가 고요한, 딜리헙
조아라 2021.04.12



살아있지 않은 존재와 함께하는 미래는



재작년에 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는 ‘기술영향평가’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말 그대로 과학기술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해 보는 자리인데, 매년 다른 주제를 선정하여 토론을 진행한다. 내가 참가했을 때에는 ‘소셜 로봇’, 다시 말해 ‘인간과 감정적으로 교류하는 로봇’이 주제였다. 

기술영향평가라는, 다소 딱딱해 보이는 타이틀과는 달리, 토론은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인간과 감정을 교류하는 로봇이 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로봇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에 관한 걱정도 오고 갔다. 물론 개중에는 마냥 핑크빛 미래만을 그리는 참가자도 있었다. 로봇이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돌보아 주는 등 인간의 바람직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참가자는 로봇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도 분명히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사실 로봇의 등장은 항상 두려움을 동반해 왔다. 다만 그 두려움의 모양이 시대에 따라 변해 왔을 뿐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로봇이 인간을 정복하는 상황을 걱정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터미네이터> 같은 많은 옛날 SF 영화들은 종종 이러한 상황을 묘사하고는 했다. 하지만 로봇이 반항하면 재빨리 배터리를 빼버리라는 우스갯소리처럼, 통제 불가능한 로봇에 대한 공포는 이제 구시대적인 발상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지금은 로봇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더 두려운 상황이다. 나보다 커피를 맛있게 만드는 바리스타 로봇에게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큰 두려움은 로봇이 인격(人格), 즉 인간으로서의 자격마저도 획득할 지도 모른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 고유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이다. 예를 들어 진정한 사랑이라든가 인간 특유의 존엄성 같은 것들은 지금까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다른 존재는 이러한 인간 고유의 영역에 들어올 수도 없고 들어와서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로봇이 극도로 발달하여 이러한 영역을 침범한다면 어떻게 될까? 로봇이 인격을 갖추게 되고, 인간과 로봇 사이의 진정한 사랑도 가능한 세상이 오게 된다면 말이다. 그러한 미래 세상에 사는 인간은 로봇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서글픔에 비참할까? 아니면 로봇 기술을 향유하며 오히려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고요한 작가의 <기계아이의 노래>는 이러한 미래를 담담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기계아이의 노래>는 안드로이드1)가 이미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심지어 자격시험을 통과한 안드로이드는 인권을 취득할 수도 있는 먼 미래의 세상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人)권을 획득하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아무튼 이 작품의 배경은 그렇다. 스토리는 제임스 왓슨이라는 인공지능 기업 CEO가 마케팅의 일환으로 로봇 여자아이를 입양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로벨이 그 로봇 여자아이의 가정교사로 고용되고, 결국 로봇 아이와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이다.



기술적인 논란-불쾌한 골짜기 현상2)을 극복하고 인간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의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이나 극히 허구적 상상이 가미된 부분-기계어를 음성화하여 대화하는 장면-을 차치한다면 이 작품은 제법 그럴듯하게 미래를 그리고 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판타지 세상이 아니라 기술만 충분히 발달한다면 우리 사회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을 묘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단 로봇 아이를 입양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퍼포먼스라는 점이 그렇다. 애당초 로봇 아이는 안드로이드 회사의 최신 모델이며, 입양은 이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아내와 사별한 지 오래된 CEO가 로봇 아이를 입양하는 쇼를 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이 로봇 아이 ‘제품’을 ‘구매’ 하도록 유도하고자 함이다. 주인공 또한 가정교사로서 고용되기는 하였지만, 실상은 제품의 베타테스터에 가깝다. 로봇 작동에 이상은 없었는지 매일 점검하여 보고하는 일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주인공이 결국 로봇 아이와 사랑에 빠진다는 점도 그럴듯하다. 어찌 보면 로봇에게 감정을 이입한다는 것이 허무맹랑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인간은 사물을 의인화하기 마련이다. 얼마 전 TV에 망가진 인형을 수리해 주는 업체 사장님이 등장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곳에 인형 수리를 의뢰하는 고객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그 업체를 ‘인형 수리센터’가 아니라 ‘인형 병원’이라고 불렀으며, 인형의 ‘수리’가 아닌 ‘치료’를 의뢰했다. 마치 정든 인형이 진짜 아프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업체 사장님의 타이틀도 사장님이 아니라 ‘인형병원 원장’ 이었다. 이와 같이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인형에게도 감정을 이입하는 존재가 인간인데, 하물며 인간처럼 행동하는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더구나 주인공 노벨은 갈 곳 없는 고아라는 설정이니, 인간을 닮은 로봇에게 감정을 느낀다는 점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이렇듯 이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의 미래가 정말 이렇게 흘러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로봇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고 기대되는 동시에, 인간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물론 이 작품이 얼마나 미래를 정확하게 묘사했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만화가의 상상력은 때로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기도 하다. 이정문 만화가가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한 컷 만화처럼 말이다. 이 만화는 굉장히 높은 정확도로 2000년대의 생활을 예측해서 화제가 되었다. 미래학자들처럼 정교한 미래예측 방법론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상상만으로 이렇게 정확하게 예측하다니, 만화가의 상상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러한 의미에서 어쩌면 <기계아이의 노래>에서 묘사하는 세상도 진짜로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권을 획득하고, 살아있지 않은 존재의 삶을 지켜보는 것이 전혀 위화감이 없는 세상 말이다.


1)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인간과 닮은 행동을 하는 로봇

2)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이 인간과 더 많이 닮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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