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인류를 위한 기술 : <노루>
[6월 리뷰] <노루>, 안성호, 다음 웹툰
김진철 2021.06.17


인류를 위한 기술 : <노루>


희망을 주지 않는 구원자

반복된 자연재해로 문명이 파괴된 지구. 사람들은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폐허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지구는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온통 모래로 뒤덮였다. 생명의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허나 이렇게 암울한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인류가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삶은 아니다. 언제 붕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건물들처럼 그들의 삶도 곧 무너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다. 200광년 떨어진 델타 행성에서 지구를 촬영하러 온 우주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에게 생활은 없었고, 생존만이 남아있다.”


이 상황에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홀연히 나타나 음식을 건네주는 이가 있다. ‘노루’라는 사나이다. 사람들에게 그는 가뭄 속 단비와 같은 존재이다. 사람들을 절망에서 구원하는 구원자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노루는 여느 구원자들과 다르다. 그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지만 희망을 주지는 않는다. 뼈를 때리는 말을 하면서.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앞으로도 쭈욱 힘들 겁니다.”


그는 냉정하게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버리라고 말한다. 지구에 더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웹툰에서 보여주는 지구의 모습은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버린 모습이다. 균형을 잃은 지구의 복수는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을 수만 년 전으로 되돌려 버렸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디스토피아의 미래이다.

△ <노루> 5화 중

 

우리는 기술의 발달이 먼 미래에도 인류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곤 한다. 첨단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세계는 초고속으로 연결된 사회가 되고, 스마트폰 하나면 대부분의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첨단기술로 무장한 무분별한 개발이 지구를 쉴 새 없이 파괴하고 있다. 도시화로 사라지는 숲, 온난화로 인한 기온상승, 다양한 기술로 만들어진 인공화학제품의 범람 등은 지구 자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동식물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에 사는 인간도 그 영향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우주 시대를 표방하며 쏘아올린 인공위성들의 잔해가 떨어지는 것을 걱정을 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는 지구의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모피어스가 주는 빨간 약을 먹고 자신이 살았던 세계가 가짜였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다. 어쩌면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서 파란 약을 먹고 회피하는 삶에 만족하는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일말의 희망으로 꿈꾸는 미래

폐허 속에서 재건을 꿈꾸는 자들이 있다. 사람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지는 마지막 유토피아 ‘공존’, 그리고 공존을 비밀리에 만들어가는 ‘세계연합’. 이들은 지금의 세대가 아닌 미래의 세대를 위해 일을 한다. 세계연합의 일원인 노루는 폐허가 된 지구를 사진으로 기록하며 “현시대는 아니더라도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 혹은 더 먼 미래. 분명 인류는 일어날 겁니다”라고 믿는다. 사람들에게는 단호하게 희망을 버리라고 말을 하면서 자신은 인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도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음식을 가져다주는 노루의 방문을 하루하루 기다린다. 빌딩 안의 여자는 공존을 보여주겠다는 노루의 약속 덕분에 혼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다. 노루는 희망을 주는 구원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영웅처럼 다가와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었다. 

△ <노루> 2화 중


그러나 작가는 그 희망이 신기루처럼 간단하게 부서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보여준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빼앗기 위해 노루를 공격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노루 역시 마지막 보급품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공격한다. 결말은 파국이다.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었던 노루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결국 목숨을 잃는다. 빌딩의 여자도 사막화된 공존의 사진을 보고 더이상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다. 미국 핵과학자회(BAS)에서는 2021년 지구종말의 시간을 100초 전이라고 발표했다. 상징적인 시간이지만 그만큼 인류가 처한 위험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인류의 미래는 절망 뿐일까?

노루의 생명은 꺼졌지만 그의 희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지구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관찰만 하기로 했던 우주인은 스스로 정한 약속을 깨면서 노루의 의지를 이어나간다. 우주인을 통해 노루의 유물은 진짜 공존을 만들어가는 세계연합에 전해진다. 그동안 촬영된 노루의 여정도 함께 말이다. 덕분에 삶을 포기했던 빌딩의 여자에게도 구원의 손길이 닿을 수 있었다. 어쩌면 우주인은 미래의 시간을 살짝 엿보는 우리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만화 <표류교실>에서는 현재의 쓰레기가 미래로 간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현재와 미래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작은 행동이 미래를 살리는 희망이 될 수도, 끔찍한 절망이 될 수도 있다.

제주신화 <천지왕본풀이>에서는 해와 달이 두 개가 떠 있어 낮에는 더워서, 밤에는 추워서 사람들이 살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영웅이 대별왕과 소별왕이다. 이들이 천근활, 백근살로 해와 달을 하나씩 떨어뜨려 비로소 인간들이 편히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신화에서 전해진다. 신화에서는 신이 인간을 위해 해와 달을 떨어뜨렸는데, 지금의 인간들은 인공태양을 만드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자연을 기술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기술을 찾을 것인가, 기술을 맹신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기후 위기와 더불어 인류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모쪼록 인류의 지혜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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