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고교수와 나> : 영원히 던져질 질문들에 대하여
[6월 리뷰] <고교수와 나>, 마레, 레진코믹스
김민서 2021.06.17



<고교수와 나> : 영원히 던져질 질문들에 대하여

복제기술이 발달하고 강화주사, 노화 치료제가 출시되는 가까운 미래. 웹툰 <고교수와 나>는 이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교수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 석학으로, 괴팍한 성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증오를 사지만 오랜 제자이자 친구인 석현과의 관계는 사뭇 다르다. 해외 근무를 마친 석현은 5년 만에 고교수를 찾아가는데, 강화 주사를 맞으며 80대의 나이에도 탄탄한 신체를 유지했던 고교수는 어쩐지 마른 데다가 휠체어에 앉은 채로 석현을 맞이한다. 심지어는 20년 전 고교수를 고문, 살해하려 했던 아들 용민이 그의 시중을 들고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석현은 자신이 다녀간 날 고교수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고교수,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용민, 그리고 무엇을 의심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석현 사이에 긴장감이 감돈다.


※ 이 아래부터 <고교수와 나>에 대한 강력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신이란 무엇인가

앞으로의 글에는 스포일러가 가득하므로, 아직 <고교수와 나>를 보지 않았다면 아주 재미있으니 어서 완독하러 떠나기를 추천한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다면, <고교수와 나>를 꿰뚫는 질문을 파헤쳐보도록 하자.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인간과 복제인간의 조우다. 24화에서 석현이 돌아온 다음날부터 23화까지 우리와 함께한 것이 원래의 석현이 아니라, 고교수가 석현의 바이오 데이터를 이용해 자기 자신을 재구축한 석현(이를 석현K라고 부르도록 하자)임이 드러난다. 여기서 우리는 23화 마지막 대사 “나는 울음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에서 ‘내‘가 지칭하는 인물이 그 순간 용민에게 제압당하는 석현K가 아니라 지하감옥 안에 갇힌 오리지널 석현임을 깨닫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그 말을 한 주체가 오리지널 석현과 석현K 중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석현K가 한 말이었다면 석현K는 오리지널 석현과 자신을 동일 인물로 본 것이 된다. 만들어진 방법과는 상관없이, 같은 성분과 구조를 따라 같은 정체성이 구현된다면 같은 개체라고 볼 수 있을까?

27화에서 고교수와 고교수의 클론(이를 고교수B라고 부르도록 하자)이 조우할 때도 같은 질문이 다루어진다. 고교수는 고교수B에게 ‘어쨌든 지금은 다른 개체인 이상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고교수B는 “인간을 세포, 분자 단위로 쪼개고 찢어발겨 재조립하는 변신을 꾀하고… 동물의 사체를 모아다가 자신을 복제해놓았으면서 ‘너’여야만 하고 ‘나‘여야만 하다니. 이런 모순이 다 있나.”라며 같은 정체성을 가지는 두 사람을 동일한 존재로 상정한다. 작가는 이처럼 석현K와 고교수B의 존재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유물론적 시각을 제시한다.

 


인간을 오직 각종 분자가 우연히 특정한 방식으로 결합해 만들어낸 구조물로 환원해 바라본다면, 신은 인간에게 무엇일까? 25화에서 고교수는 ‘우연의 퇴적을 꿰뚫는 것이 영혼이니 신이니 하는 것의 실체 아니겠냐’고 독백한다.


나는 왜 나로 태어나서 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내가 원한 적도 없는데. (중략) 예를 들어 돌멩이. 이것이 존재하기 위해서 흙 알갱이들이 날리고, 쌓이고, 옮겨져서 압력을 받고, 깨어지고, 쓸려서 이렇게 존재하게 된 것처럼, 나 역시 숱한 우연이 퇴적된 결과가 아닌가? 그리고 그 우연의 퇴적을 꿰뚫는 것이 영혼이니 신이니 하는 것의 실체가 아닐까. (중략) 무슨 차이일까. 나를 나로 만들고 너를 너로 만든 것. 타고난 유전자와 주변 환경, 겪어낸 시간들. 그 모든 컨트롤할 수 없는 요소들.


종교에서 제시하는 신이든, 선한 신을 믿지 않는 이가 떠올리는 신이든, 결국 절대적인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과 맞닿아 있다. 모두 진부하지만 끝없이 탐구하게 될 의문들이다.


우연을 통제하려는 시도에서 기인하는 거부감

인간의 의식과 기억을 복제하는 일은 아직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일지 모르나, 현대 기술이 대중의 지식과 인식이 따라잡기엔 너무 빠르게 나아가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작품 속 대중과 마찬가지로 <고교수와 나> 독자들이 느낄 거부감은 작품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통해 해소된다. 타인 자체가 되고자 하는 인물, 복제되는 대상, 늙은 아버지를 고문하는 아들을 모두 사람이 아닌 조류로 표현해, 독자들은 인물과 사건에 대해 거부감보다는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의 SF 장르 웹툰에서는 이러한 거부감을 어떻게 다룰지 궁금해진다. 먼 미래가 가까워 올수록 답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하는 날도 가까워 온다. 난제를 직면하는 과정에서 매스 미디어로서의 웹툰이 맡게 될 역할도 기대하게 된다.



 현재의 지식으로는 모든 우연을 통제해 인간의 정체성을 복제하는 기술이 개발되리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누가 알겠는가. 9화에서 인터뷰어의 질문에 답하는 고교수의 모습처럼,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신이란 무엇인가. 해결되지 않은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 <고교수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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