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불멸의 날들> : 아무도 죽지 않는 디스토피아
[6월 리뷰] <불멸의 날들>, 허긴개, 레진코믹스
이한솔 2021.06.21



<불멸의 날들> : 아무도 죽지 않는 디스토피아


불멸 프로젝트가 완성된 세계

외계행성, 낯선 생명체,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 등 많은 SF 소재는 이제 대다수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진다. 슈퍼히어로들이 외계행성을 배경으로 전투를 벌이는 마블 시리즈 영화들은 극장가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고, 〈덴마〉, 〈승리호〉 등 다양한 SF 웹툰 작품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SF 작품의 가장 큰 재미 요소 중 하나는 독창적인 소재와 고유한 세계관이다. 레진코믹스에서 랭킹 1위를 달성하며 높은 인기도를 지닌 〈불멸의 날들〉 역시 해당 작품만의 뚜렷한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허긴개 작가의 〈불멸의 날들〉은 제목 그대로 ‘불멸’을 주요 소재로 한다. 〈불멸의 날들〉은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브레인 스캐너, 바이러스, 인공 지능 전투 로봇 등 다양한 SF 소재들을 두루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소재는 단연 ‘불멸 프로젝트’인데, 바로 그 불멸 프로젝트를 통해 모든 인간들이 ‘불멸자’가 된 세계가 〈불멸의 날들〉이 그려내는 시공간이다. 


아무도 죽지 않는 디스토피아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과학자 ‘닥터 노스’가 불멸 프로젝트를 완성시킨 후, 인류는 무한히 회복하는 몸을 갖게 되었다. 질병도 부상도 모두 회복하여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도, 유한한 삶에 따라오는 필연적인 슬픔도 이제는 옛것 중 하나로 기억될 뿐이다.

작중에서뿐만 아니라 웹툰 말미의 추가적인 서비스컷을 통해서도 다양한 SF 설정을 살펴볼 수 있는데, 〈불멸의 날들〉에 등장하는 과학기술 및 사회문화는 유토피아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법제화되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동성결혼,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의 성씨, 동물 복지를 위해 제정된 다양한 법률 등 섬세한 설정과 세계관에서 허긴개 작가의 다정함이 느껴진다.



△ 〈불멸의 날들〉 3화


그러나 이처럼 누구도 죽지 않는 유토피아는 ‘멸’에게 지옥과도 같은 공간이다. ‘필멸자’라는 체질은 멸에게 치명적인 단점이자 절대 드러낼 수 없는 치부다. 멸은 하위구역에서 태어났기에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굉장히 제한적인데, 필멸자라는 비밀은 그의 삶을 더욱더 속박한다. 취업뿐만 아니라 일상에 있어서도 필멸은 타인과의 유대와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그 누구도 죽지 않기 때문에 ‘살인’이 죄목조차 되지 않는 시대. 죽음조차 수익을 위해서라면 감수할만한 고통으로 치부되는 세계. 이러한 공간에서 필멸자로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괴물들 사이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는 인류를 해방시켜주지 못했다. 사멸교와 자살기도, 언데드매치, 유아 장기매매 등 ‘불멸’의 세계에서만 존재 가능한 불행이 생겨나고,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모호해져 간다. 윤리와 비윤리 사이에서 헤매는 사회는 사람의 죽음을 이해하지도 애도하지도 않는다. 이 고독한 세계에서 ‘필’과 ‘멸’의 만남은 그 이름만 살펴보아도 대단히 운명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필과 멸, ‘필멸’은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동족이다. 필은 그런 멸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멸이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불멸자는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 즉, 괴물이다.”



△ 〈불멸의 날들〉 24화


불멸의 시대에 필이 선택한 생존법이란 이런 것이다. 얼마든지 자존심을 버리고, 거짓으로 용서를 구하며, 좋은 사람인 척 웃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내는 것. 필에게 불멸자들은 ‘사람’이 아니다. 불멸자들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고, 죽음조차 누릴 수 없는 열등한 괴물들이다. 그러니 죄책감 없이 남들을 속이고, 죽여서,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얻어내는 것만이 그의 행동 근거이자 목표다.



△ 〈불멸의 날들〉 173화


하지만 멸은 그런 필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멸이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방향이 다르다.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조건이란 죽음의 유무가 아니라 이타심의 유무다. 그래서 필이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며 상대를 해칠 때마다, 구할 수 있는 타인을 손쉽게 외면할 때마다 멸은 묻는다. “소장님… 제가 지금 인간과 함께 있나요? 제 눈앞에 있는 게 인간이 맞나요? (173화)”



△ 〈불멸의 날들〉 60화


작품의 1부가 완료되고 2부에 접어들었지만 필과 멸은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인지 협의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둘의 관계가 반드시 파멸로 향하는 결말을 암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절한 외로움을 느끼고, 서로에 대한 유대감을 갈구하면서도, 결국 타인을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필과 멸 두 사람은 모두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들이니까. 그러니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불멸의 날들〉이 보여주는 ‘인간’들의 모습을 감상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작품을 감상할 때 ‘베사메 무초(Besame Mucho)’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는다면 더욱 좋은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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