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나쁜 놈이 나쁜 놈을 만나고 : <후기>
[7월 리뷰] <후기>, 조석, 네이버 웹툰
이한솔 2021.07.06



나쁜 놈이 나쁜 놈을 만나고 : <후기>



조석 작가의 스릴러 웹툰 〈후기〉는 “후기의 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농담에서부터 탄생한 웹툰이다. 〈마음의 소리〉 완결 이후 〈후기〉라는 제목의 작품을 연재하면 웃길 것 같다는 아이디어에서 창작된 작품인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시원시원하게 전개되는 점이 매력적이다. 2020년 8월부터 연재된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일상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무가지,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글, 원룸…… 그리고 스토킹, 주거침입, 무관심한 경찰. 〈후기〉에서는 일상 속 익숙한 풍경, 익숙한 범죄, 익숙한 두려움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주인공 ‘해수’는 어느 날 우연히 무가지 ‘로터리 N'에서 연재되는 소설 <후기>와 관련된 의미심장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연쇄 살인을 소재로 한 소설 속에서 다음 피해자의 이름으로 해수의 이름이 등장했는데, 소설에서 묘사되는 인적사항이 자신의 것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것이다. 신문사에 전화를 해보아도 연락은 되지 않는다.  이 와중에 원룸 건물에서 수상한 이웃들을 마주하고, 자신의 방 안에서는 주거침입과 스토킹의 흔적까지 발견하게 된다. 3화 안에 빠르게 나열되는 이 모든 사건들은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불안감을 주지만, 진정한 공포는 이러한 풍경이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모든 게 너무나 이상하고 미심쩍게 흘러가고 있는데도 공권력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고, 어쩌면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 이 아래부터 <후기>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후기〉 3화

이러한 일상적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독자들로 하여금 〈후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이자 〈후기〉의 서사를 결말까지 끌고 나가는 힘이다. 〈후기〉의 후기에서 작가는 “나쁜 놈이 나쁜 놈을 만나고, 지나가던 나쁜 놈도 있고, 그로 인해 나쁜 놈이 생겨나는 그런 이야기”라고 이 작품을 표현한다. 그 말대로 〈후기〉는 해수가 거주하는 ‘청학원룸’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나쁜 놈’들을 잔뜩 보여준다. 그리고 나쁜 놈들이 벌이는 각각의 악행을 겹쳐 보여주되, 어떠한 법적인 구제도, 정신적 구원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작품의 주축을 이루는 가장 주요한 악당인 ‘백화’는 첫 등장 장면에서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아주머니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후 청학원룸이라는 해수의 거주지에 침입함으로써 그의 일상을 완전히 파괴하고, 〈미저리〉의 ‘애니 윌킨스’와 비슷한 집착과 광기를 보여준다. 백화는 <후기>의 작가인 해수에게 1시간 안에 시체를 완벽히 처리할 것을 강요하고, 자신이 직접 소설을 대필하여 신문사에 전송하는 등 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설 <후기>가 실제 살인사건에 대한 후기를 담은 것이며, 해수가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나가던 나쁜 놈이 진짜 나쁜 놈을 만나는 순간이다.



△ “넌 논리적인 놈이지? 난 논리가 없어. 무논리를 받아라. (12화)”

‘백화’의 매력이자 〈후기〉의 재미는 바로 이 순간 반짝인다. 만약 백화가 좀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인물이었다면, 해수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곧바로 해수로부터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화는 이전보다 점점 더 큰 범죄를 저지르며 해수를 압박하고, 해수 역시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행을 반복한다. 무논리를 받아라! 그 무논리적인 악행의 과정에서 마주친 인물들 역시 나쁜 놈이 되어 또 다른 사건으로 돌아온다. 원래부터 가정폭력을 저지르던 악인이든, 정의로운 인물이었으나 가족을 잃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인물이든, 그들은 모두 청학원룸에서 죄를 저지르며 해수의 삶에 얽혀든다. 

 긴장감이 최고로 다다른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해수를 나쁜 놈으로 만든 사건, 이 모든 비극의 시작점이 밝혀진다. 소설 <후기>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김연옥 실종 살인 사건' 속 '연옥'은 해수의 누나인 동시에 해수의 진짜 정체다. 연옥이 남동생 해수의 이름을 빌려 살아오며 정체를 숨기고, 남동생을 죽인 살인범에게 복수한 것이다. 이 역시 응당히 이루어져야 할 법적 처벌을 기대할 수 없다는 좌절에서 비롯된 것으로, <후기>가 보여주는 일상적 공포의 세계관에 부합한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망설여지거나 긴장되진 않았다. 내가 읽었던 소설들에선 가끔… 복수를 그런 식으로 묘사하곤 했었으니까… (…)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복수는 날 기분 좋게 했다. 오늘은 내 최고의 날이다." (22화)


연옥의 망설임 없는 복수는 그 자체로도 오싹함을 선사하지만, 현실 속 일상과 어우러짐으로써 더 큰 공포를 이끌어낸다. 독자는 <후기>의 나쁜 놈들이 보여주는 악행과 기괴한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고, 복수가 망설여지지 않는 현실 상황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공포를 곱씹게 되는 것이다. 

청학원룸에서 ‘나쁜 놈’들은 모두 불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데, 이는 그곳이 ‘연옥’이 머무르는 장소이자 ‘연옥(煉獄)’ 그 자체인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죄인들의 죄를 씻어낼 때까지 보복의 불길이 타오르는 곳. 이런 점을 곱씹어보면, 1화에서부터 청학원룸이 보여준 그 기괴한 풍경들이 더욱 오싹하고 짜릿하게 느껴진다. 〈후기〉에서 연옥의 보복은 끝나지 않았고, 이후에도 ‘나쁜 놈’들의 무논리는 계속될 것이다. 작가가 후속작에서는 어떤 농담 위에 어떤 스릴러를 쌓아나갈지 기대감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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