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왕세자 입학도> : 군자의 바른 마음으로
[9월 리뷰] <왕세자 입학도>, 무번, 네이버웹툰
이한솔 2021.09.14



<왕세자 입학도> : 군자의 바른 마음으로


조선시대는 가상역사 장르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 중 하나다. 상상력을 자극할 만큼 낯선 과거인 동시에, 비교적 관련 사료가 많이 남아있어 친숙한 시대이기 때문일까? 〈해를 품은 달〉,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조선시대 가상의 사건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고, 특히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드라마명 ‘성균관 스캔들’)〉은 출연 배우들의 대표작품이 될 만큼 크게 흥행했다. 조선시대 성균관을 배경으로 미남을 네 명이나(그 중 한 명은 남장여자이긴 하지만)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니, 성공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조선시대 성균관에서 재학 중인 유생 사인방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또 하나의 작품이 있다.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무번 작가의 〈왕세자 입학도(이하 왕도)〉다. 〈왕도〉는 조선 후기 가상의 왕조를 배경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성균관에 입학한 세자 ‘효동’을 포함한 사인방의 나날들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흥행요소와 완성도를 두루 갖추었으나 상대적으로 작품명이 적게 언급되어, 애독자로서 〈왕도〉가 명작이라고 소문내고픈 욕망을 감출 수 없다.

△ 〈왕세자 입학도〉 3화

〈왕도〉의 주인공 효동은 세자로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교육을 받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성균관에 입학한다. 일종의 조선판 언더커버 보스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보스, 귀여워도 너무 귀엽다. 이제 겨우 열두 살이 된 효동은 둥근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둥글둥글하니 순박하다. 옆에 항상 붙어 다니는 호위무사 ‘영달’의 큰 덩치와 무뚝뚝한 성정 때문인지, 효동의 생김새와 성격이 더욱 ‘귀염뽀짝’하게 느껴진다. 효동과 영달 두 사람은 곧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이자 선배 유생인 ‘능금’, 그리고 능금의 소꿉친구인 ‘우람’과 금세 친분을 쌓는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사인방이 된다. 사인방 모두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차이를 둔 캐릭터 디자인과 개성 있는 성격으로 각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

〈왕도〉가 그려내는 성균관 생활은 낭만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몹시 섬세하고 구체적이다. 성균관 내의 다양한 제도, 관습, 기관명 등이 꼼꼼하게 설명될 뿐만 아니라, 공간적 배경 또한 세밀하게 묘사된다. 건물 디자인을 포함하여 실제 건물 위치와 거리 등을 고증하며 세밀하게 보여주는데, 작화만이 아니라 작품 하단의 ‘작가의 말’에도 그 정성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무번 작가는 12화 작가의 말을 통해 사인방이 ‘옥이’를 만나러 가기 위해 걸어간 길이 “성균관에서 창의문을 거쳐 홍제역까지 비포장도로로” 걸어간 것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해주는데, 이를 통해 머릿속으로 보다 명확한 형태로 성균관을 그려보며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 〈왕세자 입학도〉 15화

무엇보다 〈왕도〉가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풍경 중 하나는 바로 사람들의 모습이다. 유생뿐만 아니라, 성균관 내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효동은 성균관에서 다른 유생들과 어울리며 각 계절마다 많은 사람과 사건을 직접 보게 된다. 단오제에서 발견한 고양이 ‘단오’를 키우게 되거나, 놀이패 ‘도영’의 사랑 고백을 보게 되는 등 귀엽고 풋풋한 사건을 겪으며 성장해가지만, 효동이 목격하게 되는 모든 이야기가 아름답지만은 않다. 시를 배우고 싶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한 ‘옥이’, 추근대는 유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족들과 도망가다가 살해당한 관노 ‘사미’. 그리고 관리층의 수탈과 핍박으로 착취당하는 여러 백성들. 그것들은 효동이 궁궐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실이고, 그렇기에 때때로 가혹하고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사미의 경우 모든 약자들이 창작물 속에서 으레 그렇듯 귀신의 모습으로 효동에게 찾아오기 때문에 더욱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 〈왕세자 입학도〉 32화

이러한 경험 속에서 효동이 보게 되는 것은 단순히 ‘사건’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고귀하고 평안한 사람들이 아니라, 미천하고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 노비, 어린아이, 여성의 목소리. 처음엔 달아나고플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던 효동은 점차 그 모든 마음과 목소리를 직접 바라보고 들으며 참된 군자로서 성장해간다. ‘귀신’으로 형상화될 만큼 처절한 약자들의 목소리는 무섭고 헛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로서 마땅히 돌보아야 할 현실이다.

효동을 포함한 사인방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거창하지도 극적이지도 않다. 효동이 세자로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면 빠르고 시원하게 ‘사이다’처럼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효동이 선택한 것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하고, 사과하며, 약속하는 과정이다. 물론 그것이 항상 완전무결한 해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옥이는 여전히 양반의 도움을 받아야만 시 공부를 이어갈 수 있고, 백성을 향한 관리들의 수탈은 청산되지 않았다. 다만 사인방은 군자로서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부끄러워하며 가능한 가장 바른 길을 걸어갈 뿐이다. 

△ “자고로 대인이란, 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을 바르게 하는 사람이라고 배웠으며, 선비는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이라 배웠습니다. (3화)”

〈왕도〉는 부끄러움을 아는 등장인물들을 옳은 방식으로 보여주고, 그것을 감상하는 독자들 역시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러니 효동을 포함한 사인방 모두 진정으로 ‘군자’라 할 수 있으며,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왕세자 입학도〉라는 이 작품 또한 군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자신을 바르게 하고 남을 바르게 하는 작품이니, 꼭 한 번쯤 반듯하게 앉아 감상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덧붙여, 작품의 스토리, 작화, 고증뿐만 아니라 몇몇 회차에 포함된 배경음악 역시 〈왕도〉를 감상하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니 꼭 함께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특히 61화에서는 영조례를 위한 놀이패의 공연이 벌어지는데, 회차 내내 대사가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작중의 분위기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 눈과 귀가 모두 즐겁고, 이후 영상화를 비롯한 2차 사업까지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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