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지적 낭비의 즐거움 : <에이스 하이>
[9월 리뷰] <에이스 하이>, 글 : 이창현, 그림 : 유희, 카카오웹툰
김경훈 2021.09.24


 지적 낭비의 즐거움 : <에이스 하이>

 

 최근 길티 플레져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길티 플레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죄의식을 동반하지만 했을 때 즐거운 일'을 뜻한다. 과거에는 양립할 수 없었던 '길티'와 '플레져'라는 개념이 취향의 다양성 및 개개인의 욕망을 긍정하는 최근 사회 분위기에 따라 양립 할 수 있게 되면서 생긴 신조어이다.

 실제로 누구에게나 크든 작든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동반한 행동을 통해 묘한 쾌감을 얻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죄책감 또는 부끄러움은 결코 범법행위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통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감각들은 매우 사소하고 내밀한 것으로, 타인이 보기에는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을 뜻한다. 가령 남들 앞에서는 듣기 어려운 음악을 혼자 들으며 즐거워하거나, 깨끗하게 정돈된 방을 어지럽히는 것 정도 말이다.(물론 개인에 따라서는 조금 더 선을(?) 넘는 경우도 있겠지만 선을 너무 넘는 경우를 우리는 '길티 플레져'라 명명하지 않는다.)

 이렇듯 길티 플레져란 사소하고 내밀하기에 저마다 자신만의 길티 플레져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필자의 경우 지적 허영에 대한 조롱, 혹은 지적인 것에 대한 자조적 농담을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이에 대한 필자의 진단(?)은 지적 열등감에 대한 반발, 혹은 배운 것과 행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에 대한 좌절의 결과라는 것이다. 물론 그 조롱과 농담의 정도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여하튼 이런 조롱과 농담이 자신만의 '길티 플레져', 혹은 '찌질의 역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던 중 이러한 길티 플레져를 형상화한 웹툰과 운명처럼 조우하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에이스 하이>이다.

 

 <에이스 하이>는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의 작가인 이창현 작가의 초기작으로 작가 특유의 인문학적 지식이 잘 녹아있는 작품이다. 다만 그 인문학적 지식을 녹여낸 결과물이 매우 독특한데, 인류 지식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인문학의 편린들을 그야말로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희화화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매화 시작할 때마다 등장하는 철학, 사회학적 인용구들은 분명 작중 내용과 연관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농담의 수준일 뿐이며 오히려 정전이라고 여겨지는 담론들에 대한 시니컬한 해석과 활용들은 ‘이래도 되나?’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같은 맥락에서 작중 배경도 매우 의미심장한데, 현대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을 배경으로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용병부대 베른슈타인 편대의 좌충우돌만을 보여줄 뿐이다. 물론 중간중간 현대 사회에 대두되었던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긴 하지만 그 역시 특유의 분위기에 휩쓸려 매우 우스운 방식으로 귀결된다. 물론 다양한 철학적 담론들을 어버무린 물론 이러한 농담 역시 작가의 인문학적 지식 및 그에 대한 통찰의 깊이가 비범하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쨌든 <에이스 하이>라는 작품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힘들게 쌓아 올린 지식이 얼마나 쓸모없이 낭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 성찰의 말미에 밀려오는 묘한 쾌감, 즉 지적 낭비의 즐거움은 필자가 가지고 있던 '길티 플레져'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지적 추구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들 모두는 알고 있고, 그렇기에 선인先人들의 이 같은 결과들에 대해 경외를 표시한다. 하지만 그 경외 때문에 우리들은 어느새 지적인 것을 어려워하고 멀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측면에서 <에이스 하이>가 보여주는 지적인 것들의 낭비는 아이러니하게도 지적인 것을 추구하고 싶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이면서도 훌륭한 길티 플레져의 형상화인가. 만약 자신이 지적 허영심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지적 추구의 여정에서 지쳐있다면 지금 <에이스 하이>를 탐독해 보시길 바란다. 지의 경계 저편에 존재하고 있는 낭비의 신세계가 여러분들에게 쾌감을 선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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