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아름다운 싸움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격기3반〉
[10월 리뷰] <격기 3반>, 이학, 네이버웹툰
이한솔 2021.10.25



아름다운 싸움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격기3반〉


극한의 노력과 감동

승리라는 뚜렷한 목표와 이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극한의 노력!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를 보며 타인의 성과에 함께 기뻐하고 감동을 느끼는 이유다. 그리고 이러한 감동 코드를 담아내는 스포츠 장르의 창작물들은 좀 더 구체적인 요소를 추가하여 보여준다. 시원한 액션 작화, 경쟁 속에서 싹트는 우정, 차근차근 성장해가는 주인공까지. 스포츠 장르만의 문법 속에서 노력과 극복의 서사가 극적으로 부각되어 드러날수록 독자들은 더욱 큰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

현재 대원씨아이에서 연재 중이며 네이버웹툰에서도 공개되고 있는 작품 〈격기3반〉에서도 이러한 재미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학 작가의 〈격기3반〉은 대한민국에서 청소년 격투기 경기가 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가상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며, 남일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주인공 ‘주지태’가 자신의 여동생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격투기반에 편입하게 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운동 경기는커녕 일반인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이기지 못하던 지태는 선배이자 스승인 ‘마리아’를 만나 주짓수를 배우게 된다. 〈격기3반〉에서 ‘옥동’이 말하는 주짓수의 매력이란 이렇다. “중요한 건 덩치나 힘이 아니양! 얼마나 냉정, 침착히 기술을 발휘하느냐라궁!!(4화)” 스포츠에 문외한인 독자들에게도 그 말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격기3반〉은 체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기존의 편견으로는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경기들을 보여준다.

남일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경기들은 단순히 성별, 체격, 종목 등의 조건이 아니라, 어떤 선수가 더 치밀하게 기술을 연마하느냐, 누가 더 극한의 인내심으로 버텨내느냐와 같은 ‘열혈’의 정신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바로 이러한 점이 작품의 강점이자 독자들이 경기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 〈격기3반〉 12화


△ 〈격기3반〉 47화

주인공은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 동생을 찾아 지켜내야만 한다는, 확고하고 아름다운 동기가 있으니까. 겁을 먹어 경기장에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던 ‘지태’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육체적 한계에 맞닥뜨린 ‘태영’이 “중요한 건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라며 투지를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이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전형적인 한계에 갇히지 않은 열혈 승부와 성장! 이것이 스포츠 장르 만화로서의 ‘국룰’이자 〈격기3반〉의 매력이다. 

그런데 학년 랭킹전이 종료되고, 서사의 범위가 학교 밖까지 확장되기 시작하며 〈격기3반〉은 질문을 시작한다. 이게 정말… 감동적인 거 맞아?


극한의 고독과 방관

소년만화 속 주인공들의 목표는 명료하며, 그들의 해피엔딩은 타당하게 느껴진다. 〈귀멸의 칼날〉 주인공 ‘탄지로’ 역시 이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고 괴로워하면서도, 오니를 멸살하고 동생을 구해낸다는 목표에는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일어나라고, 계속 싸우라고 주인공을 응원할 수 있다.

그러나 〈격기3반〉 속 ‘지태’의 싸움은 일반적인 소년만화 주인공들보다 더욱 고단하게 이루어진다. 단순히 주인공보다 강한 적수들이 많고, 훈련의 강도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탄지로’와 마찬가지로 동생을 구해낸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불행한 최후만이 유일한 속죄니까.(161화)”라는 지태의 외침처럼, 그에게는 비극적인 결말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 “나는 길에서든 옥타곤에서든…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더 폭력이 혐오스러워. (……) 
나는 천성이 이 빌어먹을 싸움질을 좋아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어떡해? 동생을 찾으려면 이 방법뿐인걸.” (<격기 3반> 130화 中)

‘지태’는 작품 극초반에서부터 꾸준히 ‘정말 격투기 따위, 나랑 안 맞아.(31화)’라고 독백하며 폭력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데, 이처럼 격투 자체에 윤리적인 회의감을 느끼는 태도가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의 성장에 대해 의문을 느끼게 한다. 싸우고 싶어 하지 않는 주인공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승리하더라도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가? 고통에 꺾일 수 없다고, 한계는 뛰어넘을 수 있다고, 그것이 불굴의 정신이라고 격기반 학생들은 다짐처럼 말하지만…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다. 아직 10대에 불과한 청소년들이 왜 이렇게까지 한계를 넘어 주먹질을 해야 하는 거지? 

‘마리아’가 남일고등학교에 재학하는 이유는 자신의 가족을 몰살한 ‘주대각’을 죽여 보복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런 ‘마리아’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태’ 역시 복수심을 발판으로 삼아 격투기 실력을 키워가지만, 도저히 그걸 ‘성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망가져 간다.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두 사람은 노력한다. 이 고통을 바라지 않더라도, 이 방법밖에는 없으니까. 그러니 남일고 신문부 부장 ‘유리’가 격기반과 관련된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 속에서 독자들은 함께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다시 일어나 싸우라고 응원하는 것은 연대가 아닌 방관에 불과하다는 걸.



△ 〈격기3반〉 161화

관객들의 예상과 달리 〈격기3반〉 속 싸움은 그다지 아름답거나 통쾌하지 않다. 가족이 없는 청소년들을 모아 격투기 시합에 내보내는 학교, 극한의 경기에 내몰려 결국 인체까지 개조당하는 선수들, 그리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어른. 이것들은 극복할 수 있어 아름다운 난관이 아니라 시정되어야 할 불합리한 고통이니까.  

그러니 〈격기3반〉 연재가 다시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독자로서 ‘지태’의 성장을 바라는 응원방식을 고민해보는 것도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을 극한의 폭력 속에 밀어 넣으며 사이다 감동 서사를 기대하는 방식 이외의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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