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더 복서> : 한국 복싱 만화의 뉴웨이브
[10월 리뷰] <더 복서>, 정지훈, 네이버웹툰
김경훈 2021.10.26


<더 복서> : 한국 복싱 만화의 뉴웨이브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스포츠가 있다. 그 수많은 스포츠들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스포츠를 꼽으라면 그중 하나가 바로 복싱일 것이다. 이미 기원전 4000년 무렵 고대 이집트 왕의 군대가 복싱을 익혔다는 기록이나 고대 그리스에서 제우스신을 경배하기 위해 열린 고대 올림픽의 한 종목으로 채택되었다는 기록 등을 보았을 때 복싱이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스포츠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복싱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으며 그 인기 또한 여전하다. 물론 MMA의 등장으로 인해 그 인기가 전성기만 못하다지만 여전히 복싱은 오직 주먹으로 상대와 겨룬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많은 남성들에게 로망이자 동경의 스포츠로 남아 있다.

 이러한 복싱에 대한 남성들의 선호는 그대로 만화라는 장르를 통해 재현되는데, 복싱 만화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내일의 죠>부터 9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더 파이팅> 그리고 최근 네이버 웹툰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웹툰 <더 복서>에 이르기까지 현실 세계 복싱의 인기와는 별개로 여전히 서브컬쳐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그중 <더 복서>는 <아웃복서>의 뒤를 잇는 복싱 만화로 그동안 한국 만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복싱 액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복서>는 그간 복싱 만화들이 가지고 있던 미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데, 과장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호쾌한 액션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타격감에 대한 연출이 그러한데, 마치 소닉붐이 터지는 작중 인물들의 주먹 효과, 마치 얼굴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표현 등은 실제 복싱을 능가하는 긴장감을 제공해준다. 물론 복싱을 경험해본 이들이나 실제 복싱 경기를 관람했던 이들에게 이러한 연출은 과장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이러한 과장은 어디까지나 만화적 연출이고, 복싱이라는 경기를 보는 이들이 받는 충격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연출을 얼마나 극적으로 잘 활용하느냐가 결국 복싱 만화가 가지는 본질, 즉 얼마나 실제 복싱 경기의 치열함과 긴장감을 만화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장점은 어디까지나 <더 복서>가 가진 만화적 형식의 측면이며, 이 작품이 기존 복싱 만화와 다른 점은 복합적인 인물들의 등장과 유려한 그들의 내면 묘사이다. 



 그동안 복싱 만화 주인공의 스테레오 타입이라 하면 정의롭고 근성 있는, 혹은 불량하지만 복싱을 통해 자신을 깨달아가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더 복서>의 주인공 유는 이 같은 복싱만화 인물들의 스테레오타입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 작중 주인공인 유는 복싱에 관한 최고의 재능을 지녔다. 하지만 유는 그러한 자신의 재능에 일말의 감흥도 없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류는 복싱을 권하는, 혹은 자신의 힘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재미있나. 사람을 때리는 게, 재미있나?” 

 이 질문은 그동안 복싱만화의 주인공들이 던져 본 적 없는 질문임과 동시에 작품이 복싱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근원적 부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즉, 유의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복싱이 근본적으로는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유가 걷는 챔피언의 길이란 결국 저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구도의 행위임을 읽어낼 수 있다. 유는 언젠가 인재에게 보았던 빛을 갈구하는데 그 빛이야말로 복싱이라는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가치라는 것을 우리는 예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 이르면 <더 복서>의 서사가 단순히 강력한 주인공의 재능을 통한 카타르시스, 혹은 대리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더 복서>는 복싱과 폭력의 차이, 그리고 복싱라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혹은 내포하고 있는 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우리에게 함께 던지는 것이다. 이는 작중 류백산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다듬어지지 않은 폭력의 재능은 결국 어떠한 가치도 창출해내지 못함을 그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가 류백산의 안티태제라고 할 수 있는 인재의 빛을 갈구하는 모습을 통해 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이처럼 <더 복서>는 기존 복싱만화의 형태적 틀을 충실하게 이어가면서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복싱이라는 행위의 근본에 대해 질문한다는 점에서 한국 복싱만화의 새로운 물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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