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의 세계속의 한국만화야사
칼럼
그곳에 가면 만화가 있다
신일섭의 거침없는 만화
박기준의 세계속의 한국만화야사
제7부 개화기 : 마치며 - 최선을 향하여
박기준
2013.08.27
장속에 처박혀 있는 책들을 조사하여 자료를 뽑다가 문득 손끝에 딸려 나온 앨범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이 툭 떨어졌다.
제7부 개화기 : (52) 만화 공모전과 카툰전 시대 / (53) 샌프란시스코의 카툰박물관 / (54) 진기한 보물의 탄생
박기준
2013.08.13
우리나라에서는 만화와 관련된 공개 행사가 별로 없었다. 1990년 9월 12일, 한국일보에서 개최한 일본 요미우리 신문 국제 카툰(CARTOON) 수상작품을 빌려다가 롯데 백화점에서 전시한 행사가 처음이었다.
제7부 개화기 : (50) 캐릭터의 등장 / (51) 캐릭터와 게임
박기준
2013.07.23
캐릭터(character)는 흔히 인물이나 성격을 말한다. 인물은 외부에서의 관찰의 대상이고, 성격은 그 인물의 내적속성이다. 성격은 주로 서설이나 희곡의 이야기 문학의 요소로 알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모든 문학을 비롯한 연극, 영화, 회화, 디자인, 만화 등의 여러 가지 예술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제7부 개화기 : (48) 한국만화의 캐릭터도 해외로 / (49) 대박의 신화 ‘뽀로로’
박기준
2013.07.09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 문화 콘덴츠 진흥원에 따르면, 프랑스 앙굴렘 만화 페스티벌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해 한국만화 특별전을 개최한 이후 한국 만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고, 최근 들어 유럽이 전체 만화 저작권 수출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연간 300만 달러 규모인 우리나라 만화 저작권 수출액 중 미국 시장은 유럽 시장에 이어 30퍼센트,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는 20퍼센트, 일본은 10퍼센트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제7부 개화기 : (46) 새로운 명작의 탄생 / (47) 일본, 미국에 도전장을 낸 박소희
박기준
2013.06.25
어떤 분야가 되었든 시대에 묻혀 사라져 가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새로 두각을 나타내며 스타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 법. 만화가 중에서도 뛰어난 걸작을 선보이며 주변의 화제로 떠오르는 신인작가들이 적지 않다. 먼저 잡지에 연재하여 인기를 검증받은 작품을 단행본으로, 또 영화로 재활용하여 작품 하나로 많은 부가가치를 얻은 작가들이다.
제7부 개화기 : (44) 만화의 산업화시대 / (45) 여성만화가들의 대거 등장
박기준
2013.06.11
마침내 만화원작이 애니메이션, 캐릭터, 영화, 게임, 완구로 제작되어 각각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 이때부터 만화계는 진정한 의미의 개화기를 맞게 된 셈이다.
제7부 개화기 : (43) 청소년 성인만화 시대 활짝
박기준
2013.05.28
1970년대는 청소년을 위한 종합 잡지가 소생한 시기였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도 있다. 그동안 만화방 체제로 흘러가는 상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잡지사며 출판사들이 눈물을 삼키며 문을 닫아야 했던가. 서울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만화방들은 만화가 절반 이상 들어 있는 비싼 잡지를 사볼 여력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싼값으로 빌려 볼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에 독자들은 잡지를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제6부 해빙기 : (38)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과 로봇 애니메이션의 등장 / (39) 로봇 태권V와 김청기 감독 / (40) 7,80년대 극장용 애니메이션 / (41) 애니메이션에 우리 로봇을 탄생시킨 김청기 / (42) 한국애니메이션을 말한다.
박기준
2013.05.14
‘홍길동장군’의 용유수 감독이 만든 ‘왕자 호동과 낙랑공주’와 ‘번개아텀’(1971) 이후 ‘로보트태권V’와 ’철인 007‘(1976)이 나오기까지 극장용 제작 흐름은 한동안 뜸하였다.
제6부 해빙기 : (36)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의 약사 / (37)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홍길동’
박기준
2013.04.25
아직 한국 애니메이션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애니메이션 제작이 시작되었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일제하의 시절, 이미 일본에서는 1910년대부터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고, 일본을 통해 애니메이션이 국내에도 유입되었으니 어쩌면 일제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근본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제6부 해빙기 : (35) 순정만화의 등장
박기준
2013.04.16
만화는 남, 녀, 노, 소 다 볼 수 있었던 초기와 달리 볼거리가 많아진 근대에 들어서면서 독자들은 까다로워졌고, 취향이 다른 것은 외면했다. 따라서 남녀용을 구분해 보는 시대다. 순정만화라는 장르는 바로 여성 취향의 만화다.
제6부 해빙기 : (34) 주니어 잡지 시대
박기준
2013.03.26
1965년 《여학생》이 창간, 여자 중고생 종합 교양지로 각광을 받았다. 당시만해도 주부잡지 《여원》이외에는 여학생들이 볼만한 잡지가 없던 때여서 학생들의 성원을 한껏 받을 수 있었다.
제6부 해빙기 : (33) 정통 만화박사 허영만
박기준
2013.03.11
허영만은 1947년 전남 여수에서 8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지물포를 운영하였을 때는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멸치 어장에 잘못 손을 댄 후 온 가족이 힘든 시련을 겪어야 했다.
제6부 해빙기 : (31) ‘소년 007’ 김삼
박기준
2013.02.19
김삼의 본명은 이정래, 1941년 황해도에서 출생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 재주꾼이라는 주위의 평을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미술 점수라면 걱정 붙들어 맬 정도로 자신이 있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취미가 영화감상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학생 입장 불가 영화를 보다가 훈육주임에게 걸려 따끔하게 혼이 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다.
제6부 해빙기 : (32) 못난이 캐릭터로 성공한 윤승운
박기준
2013.02.19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평소 독서를 즐기며 책이라면 손에 잡히는 대로 읽다보니 만화의 재미에도 눈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만화를 그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열심히 그림을 그려 보았지만 그림에는 별 재능이 없었는지 주위로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한다.
제6부 해빙기 : (29) 소년 신문시대
박기준
2013.02.05
<한국 신문만화사>가 따로 나왔을 만큼, 앞에서도 설명해 왔듯이 벌써 오래 전부터 신문에 만화를 실어서 부수 확장을 위한 효자 역할을 하게 했던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소년소녀 신문에서도 이 좋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았을 리 없다. 특히 만화는 어른보다 어린이들이 더 좋아했던 것이니까.
제6부 해빙기 : (30) 만화와 함께 한 애니메이션
박기준
2013.02.05
만화출판이 ‘합동’이라는 거대 독점 체제로 진행되면서 여기에서 소외된 또 다른 무리들이 그때까지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애니메이션 쪽으로 대거 이동하기 시작했다.
제5부 회복기 : (28) ‘왈순아지매’의 정운경
박기준
2013.01.22
정운경은 1934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서울 보성 고등학교 때는 부산 국제 신보에 그의 만화가 실렸을 만큼 이미 작가로의 기질이 싹터오고 있었다.
제5부 회복기 : (27) 캐리커처의 대부 박기정
박기준
2013.01.08
박기정은 1934년 만주 용정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해방과 함께 서울로 귀국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독서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의 취미였다. 집안 어른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될 것을 종용하였으나 남의 말에 꺾이는 성격이 아닌 강고한 그의 성격을 어쩔 수는 없었다.
제4부 동란기 : (25) 성인만화 《만화춘추》/ (26) 《만화천지》
박기준
2012.12.18
4×6배판 40쪽 분량의 성인지 《만화춘추》가 창간된 것은 1956년의 일로 8월호가 첫선을 보이자마자 야단들이 났다. 《아리랑》, 《야담》 등의 잡지를 편집하여 성공적인 사례를 남긴 임순묵이란 인물이 직접 발행인 겸 주간을 맡았으니 그 기대는 자못 컸다. 김용환의 정치만평, 세태만평, 김성환의 ‘시사만화 50년사’를 통해 외국의 시사만화들을 소개하는 글도 곁들여 실었다.
제4부 동란기 : (22) 하드커버 단행본의 물결 / (23) 사무라이 붐을 타고 온 <날쌘돌이> / (24) 천추의 한이 된 대본용 만화
박기준
2012.11.30
1957년경부터 단행본 만화에 밀린 청소년 잡지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출판계에서는 단행본을 펴내던 《만화세계》만 남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